"선수를 탓할 수는 없다. 연투가 이어지면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쓸 수 밖에 없는 팀 사정을 감안해달라".
올 시즌 풀타임으로 뛰면서 타이틀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분명 좋은 투수임을 알게 한다. 그러나 '홀드왕'은 마무리 투수 부재 상황에서 동료들과 함께 굵은 땀방울과 함께 역투를 펼치며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지 못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계투진의 심장 정재훈(30)의 이야기다.

정재훈은 10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서 6-4로 앞선 8회초 레스 왈론드의 바통을 이어받아 팀의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차전 결장으로 이틀을 쉰 만큼 그에 대한 팀의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이번에도 홈런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첫 타자 박진만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살아나는 듯 했던 정재훈은 후속 타자로 나선 대타 조영훈에게 우월 솔로포를 내주고 말았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1,2차전 연속 피홈런으로 엄청난 마음 고생을 했던 정재훈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박한이에게 역전 결승 스리런을 내주며 무릎을 꿇은 바 있다.
3차전에 앞서 김경문 감독은 정재훈의 현 상황에 대해 연민의 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계투 요원들의 체력 소모가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서 마무리 노릇까지 맡아야 하는 정재훈이 연투에 약한 면모를 보이는 데 대한 아쉬움이다.
"투구수 30개를 넘어가거나 2이닝을 넘어가면 구위가 뚝 떨어진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으나 기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투수를 탓하기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팀 사정이 더욱 안타까울 노릇이다". 재작년과 지난해 현재 정재훈의 역할을 도맡던 이재우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로 다음 시즌 활약도 불투명하며 마무리 이용찬은 있어서는 안 될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시즌을 마쳤다. 정재훈이 눈물겹게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다.
하위타선으로 넘어가는 8회초를 정재훈에게 맡긴 것은 그나마 악조건이 가득한 팀 상황에서 김 감독이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그러나 대타로 나선 조영훈의 파괴력이 번뜩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순간의 찰나를 노려 다음 기회를 도모해야 하는 조영훈 입장에서도 '먹고 살려면' 정재훈의 몸쪽 낮은 공을 띄워야 했다.
두산은 부랴부랴 정재훈을 고창성으로 교체했으나 그 또한 박한이에게 좌중간 1타점 2루타를 내주고 말았다. 고창성도 포스트시즌 전경기에 나서며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현재 두산에서 이기는 경기에 투입되는 계투 요원들은 하나같이 경기 마다 엄청난 체력을 쏟아붓고 있다.
팀은 연장 11회 손시헌의 결승타로 9-8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승리 계투가 모두 힘을 쏟는 아쉬움을 남겼다. 4차전 선발 홍상삼이 최대한 공을 많이 던지지 않는다면 정재훈을 비롯한 계투진은 또 체력을 소모해야 한다.
시즌 초중반 어깨 통증으로 인해 잠시 개점 휴업하기도 했던 정재훈은 현재 정신력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잇단 피홈런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정재훈이 살아나지 않으면 극적인 한국시리즈 진출도 기대할 수 없는 시점. 그래서 그가 고개를 떨구는 순간은 두산 팬들의 가슴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farinelli@osen.co.kr
<사진> spjj@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