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이 아니었다. 눈 시리도록 빛나던 타지마할의 자태는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사랑을 봉한 무덤 타지마할은 불면 날아갈 듯 건드리면 뭉개질 듯 바람결에 금세라도 사라질 신기루처럼 그렇게 그곳에 서있었다.
◇사무치는 사랑의 흔적, 타지마할
비행기에서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본 경험이 두번 있다. 한번은 이집트, 또 한번은 인도 도착 직전이다. 착륙을 불과 10여분 앞두고 헛된 기대가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피라미드가, 어쩌면 타지마할이 저 아래 내려다 보일지도 몰라’ 이 무모한 상상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 그들을 쫓고 있었다.

왜 그토록 그것들에 목말랐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확인’이 필요했다. 수많은 작가의 사진기로 남겨진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했고, 사실 확인이 절실했다. 마치 소개팅을 앞두고 그녀의 사진을 받아 든 사내처럼 말이다.
델리에서 200km를 달려 도착한 아그라는 타지마할로 가득하다. 표지판과 기념품, 크고 작은 가게까지 온통 타지마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하지만 ‘진짜’는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법칙은 인도에서도 어김없이 통했다.
진짜 타지마할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매표소에 내려 차를 갈아타야 한다. 배기가스로 대리석이 변색되는 걸 막기 위해 타지마할 반지름 4km 이내에서는 모터 자동차 운행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전기 자동차나 사이클 릭샤, 마차 등을 타고 입구에 도착하면 인도에서 가장 엄격한 검색대가 기다린다.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해 회랑처럼 생긴 통로를 지나면 그 끝자락에 붉은색 문이 있고, 아치형 문 안에 실루엣처럼 보이는 사람들 뒤로 하얀 백합처럼 빛나는 타지마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다섯번째 왕 샤 자한(Shah Jahan)이 자신의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위해 지은 무덤이다. 아내가 죽은 뒤 방에 틀어박혀 8일간 식음을 전폐했던 샤 자한은 하룻밤 사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얗게 변했을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전해진다.
샤 자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묘에 묻히길 원했던 뭄타즈 마할의 유언에 따라 공사를 시작했고, 매일 2만여명의 기능공이 22년에 걸쳐 무덤을 지었다. 진주, 에메랄드, 터키옥, 루비 등 스물여덟 가지 값비싼 보석이 세계 각지에서 수입돼 눈부신 백색의 재료와 섞여 우아한 보석상자로 탄생했다.
붉은색 문을 등지고 조금씩 걸어가면 타지마할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균형을 이루며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넋을 빼놓고 궁전과 연못, 정원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정갈함을 더한다. 매끈한 돔의 둥근 곡선은 하늘과 이어지며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스럽다.
궁전 네 모퉁이에는 무덤을 호위하듯 곧게 뻗은 첨탑이 서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미세하게 커져 시각적으로는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정확히 같은 너비로 보인다. 또 궁전을 기준으로 첨탑을 바깥으로 약간 기울여 정면에서 봤을 때 반듯하게 비춰지도록 했다. 이는 지진이 일어나도 첨탑이 바깥으로 쓰러져 타지마할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묘안이기도 했다.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조각된 내부에는 왕과 왕비의 관을 상징하는 두개의 대리석 관이 놓여 있다. 이는 유골이 없는 빈 관으로 육신은 지하 묘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
◇타지마할을 품는 세가지 방법
타지마할에 담긴 샤 자한의 사무치는 눈물은 야무나강을 건너 아그라성까지 흐른다.
샤 자한의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는 형제들과의 살육전 끝에 무굴제국 6대 황제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샤 자한은 아그라성에 유폐된다. 샤 자한은 아그라성 안쪽 별궁의 대리석 팔각 타워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 갇혀 숨을 거둘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발코니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인데, 그마저도 몸이 쇠해 힘들어지자 발아래 보석을 박고 그곳에 비치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삼만 버즈에 서서 타지마할을 보고 있으니 지척에 놓인 아내의 무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샤 자한의 비통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아른거리는 타지마할을 두고 꼼짝없이 누워있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안개를, 비를, 지는 해를 또 얼마나 원망했을까.
원래 샤 자한은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야무나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고 한다. 죽어서도 아내와 함께하고 싶은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아들에 의해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그 잔재만 남아있다.
타지마할에서 릭샤로 15분이면 블랙 타지마할의 가슴 아픈 흔적을 밟아볼 수 있다. 야무나강에 걸린 좁은 철교를 건너 다소 황량한 분위기의 골목을 지나 주택가로 접어들면 그 끝에 블랙 타지마할을 품은 메흐타브 정원(Mehtab Bagh)이 자리해 있다.
잘 가꿔진 나무들 사이로 5분쯤 걸어 들어가면 야무나강 위로 살포시 떠오른 타지마할이 보인다. 한없이 깨끗하게 빛나던 앞모습과 달리 쓸쓸함이 묻어난다. 순간 샤 자한의 깊은 그리움과 눈물이 떠올라 가슴이 아린다.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만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새벽. 발그스레한 뒤태에 숨이 막히고 새벽사원의 기도소리에 마음은 녹녹해진다. 고기잡는 어부의 일상적인 몸짓에 가슴이 울컥거리다가도 물가를 첨벙거리는 강아지들의 재롱에 헛웃음이 난다.
무엇보다 새벽에는 태양이 바쁘게 각도를 바꾸기 때문에 붉고 푸르고 새하얀 타지마할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야무나강에 비친 타지마할은 빼놓을 수 없는 보너스 풍경이다.
타지마할을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보고 싶다면 숙소 선택에 공을 들이면 된다. 타지마할 근처에는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이 여럿 있다. 보통 타지마할 조망이 가능한 방이 따로 마련돼 있으며 일반 객실에 비해 가격은 비싼 편이다. 늦어도 보름 전에 예약해야 온종일 타지마할을 품을 수 있다.
◇Tip
타지마할 입장 가능 시간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아침잠을 줄이면 타지마할 본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은 호텔 리셉션과 타지마할 매표소에서 확인하면 된다. 새벽 이동이 부담스럽다면 호텔 리셉션에 부탁하자. 교통편 연결은 물론 적당한 가격 흥정까지 도와준다. 입장료는 타지마할 750루피(약 1만9000원), 메흐타브 정원 100루피(약 2500원).
글·사진 인도 아그라=여행미디어 박은경 기자 www.tourmedia.co.kr
취재협조=인도정부관광청 02-2265-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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