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4차전] '무명용사 3인방', 두산의 위안거리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10.11 22: 29

사실 이들을 무명용사라고 보기는 무리다. 한 명은 5년 전 계투로 8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끈 투수였으며 나머지 두 명은 청소년대표를 역임한 고교 최대어로 꼽히며 1차지명의 수식어를 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필승조가 아닌 승패에 관련이 적은 롱릴리프 보직에 있는 선수들.
 
필승 계투 요원들의 체력 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 이들이 좋은 활약상을 펼치며 분전했다. 두산 베어스의 8년차 사이드암 김성배(29)와 지난해 말 한화에서 이적해 온 좌완 김창훈(25), 그리고 지난해 1차지명으로 입단한 우완 성영훈(20)이다.

 
이들은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자기 공을 뿌리는 데 주력했다. 김성배는 선발 홍상삼을 구원해 2이닝 1피안타(사사구 1개) 무실점으로 분전했으며 성영훈은 1⅔이닝 노히트(사사구 1개)로 호투했다.
 
김창훈의 경기 성적은 ⅔이닝 무피안타 1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이는 8회초 뒤를 이은 고창성이 위기 상황 진화에 실패했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레스 왈론드가 박한이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내주며 김창훈이 볼넷으로 출루시킨 이영욱을 들여보내는 바람에 생긴 실점이다. 팀이 7회 집중 5득점으로 7-7 동점을 만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직전까지 징검다리 노릇을 한 이들의 수훈은 분명 값졌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9경기를 강행군한 두산은 정재훈-고창성-임태훈-이현승-레스 왈론드로 이어진 승리 계투진의 체력 소모가 극심했던 터였다. 특히 고창성은 지난 10일 플레이오프 3차전까지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굵은 땀을 흘렸다. 오죽하면 선수 본인이 "개근상은 포스트시즌 때 안 나오나요"라며 농을 던졌을 정도. 고창성은 4차전에서도 김창훈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이기는 야구를 추구하는 중이라 어쩔 수 없지만 김경문 감독 또한 "경기 당 투구수 등을 따지면 승리 계투 요원들 중 나올 수 있는 투수가 없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김 감독은 "3차전 연장 11회 2실점하기는 했지만 큰 경기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지는 데 주력했다"라며 기대감을 비췄다. 4차전에서 출장 기회를 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
 
저마다 아픔이 있는 투수들이다. 지난해 상무에서 제대했으나 시즌 초반 발등 부상으로 초반부터 그르쳤던 김성배는 올 시즌 투구 밸런스 문제로 인해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은퇴기로에까지 놓였다. 그러나 9월 한 달간 5경기 2승 1패 평균 자책점 2.57로 호투하며 가능성을 비췄고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감을 조율한 뒤 플레이오프에 맞춰 선수단에 합류했다.
 
김창훈의 경우는 더욱 기구했다. 2004년 초고교급 투수로 한화에 입단한 김창훈이었으나 첫 해부터 팔꿈치, 어깨 과부하로 인해 선수생활 지속 여부까지 불투명했던 투수. 2007년 공익근무 기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4년 간 공 한 번 던지지 않은 채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막판 직구 구속을 143km까지 끌어올리며 극적으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직구만으로도 타자를 제압하던 성영훈은 첫 해 2승을 거뒀으나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지난해 5월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올 시즌 전에도 좋은 구위를 선보이며 기대감을 비췄으나 이번에는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며 2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마무리 이용찬을 대신해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올랐다.
 
사연이 많은 선수들이었으나 승리가 중요한 시점인지라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이들은 중용받지 못했다. 힘없이 시리즈를 패퇴했더라면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수도 있던 선수들이지만 10일 3차전 연장 접전 속에서 기회를 얻었다. 11회초 2실점하며 패색이 짙은 순간으로 흘러갔으나 김 감독은 이들의 경기 성적보다 동요되지 않는 강심장을 높이 샀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또다른 부담을 안겨준다. 패색이 짙은 만큼 던지면서 만회점이 나오지 않을 경우 던지는 투수조차 패배의식에 물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명의 '알려지지 않은' 용사들은 꿋꿋이 제 몫을 해내며 코칭스태프에 자신들의 가능성을 알렸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farinelli@osen.co.kr
<사진> 김성배-성영훈-김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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