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게 있다.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존재들이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노리고 있는 삼성에도 그런 존재들이 있다. 지난 2002년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2005~2006년 2연패 시절 그리고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영광과 좌절을 겪었지만, 언제나 그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배영수(29)와 박한이(31)가 바로 그들이다.
▲ 우승공신의 좌절

배영수와 박한이는 2000년대 삼성을 이끈 주역들이었다. 배영수는 마운드에서 에이스 노릇을 해냈고 박한이는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부터 2005~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 시절에도 그들은 당당한 우승공신이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삼성을 지키고 있는 선수는 배영수와 박한이 그리고 진갑용밖에 없다. 세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서 그들의 활약을 빼놓고는 결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만큼 꾸준하게 마운드에 오르고 또 유니폼을 더럽혀가며 팀을 위해 공헌한 선수도 드물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비슷한 시기 좌절을 겪었다. 배영수는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 과정에서 투수의 생명인 팔꿈치를 바쳤다. 배영수는 투혼의 피칭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지만, 우승의 달콤함이 끝난 이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수술대였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로 1년을 재활에 매달렸고 2년의 방황기를 겪었다. 박한이는 또 어떠한가. 매년 큰 부상없이 꾸준히 출장해 3할 안팎의 타율로 9년간 근속하며 얻은 FA 자격이었다. 그러나 그에 걸맞지 않은 찬밥대우를 받으며 2년간 10억 원의 헐값에 재계약했다.
▲ 화려한 가을맞이
페넌트레이스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서 체면치레를 한 두 베테랑은 화려한 가을맞이로 부활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는 플레이오프에서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2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5이닝 4피안타 2볼넷 3탈삼진 3실점으로 선방한 배영수는 4차전에서 8-7로 쫓긴 8회 2사 3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막아내는 등 1⅓이닝을 탈삼진 2개 포함 무실점 '퍼펙트'로 막아내며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세이브도 따냈다. 직구 최고 구속이 무려 147km로 전성기에 육박했다.

박한이는 그야말로 '달리고' 있다. 1차전에서 8회 역전 결승 스리런 홈런포를 작렬시키며 만세를 불렀던 박한이는 젊은 중심타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타선의 기둥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4경기 모두 안타를 터뜨리는 등 17타수 8안타로 타율 4할7푼1리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이다. 결승타까지 2개나 때리며 결정력을 발휘하고 있는 박한이는 안타 8개 가운데 4개가 장타일 정도로 기존의 출루능력에 장타생산능력까지 과시하고 있다. 좌(2)·좌중(1)·중(1)·우중(1)·우(3) 등 타구 분포도마저 부챗살이다.
▲ 정상 향한 도전
20대 젊은 시절의 투혼을 파란 유니폼과 함께 한 그들은 이제 베테랑이자 중견의 위치에서 또 한 번 우승을 꿈꾸고 있다. 두 선수는 젊은 시절 넘치는 혈기로 우승을 경험했다. 마운드에서 강속구로 패기를 부딪쳤고, 그라운드에서 허슬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으며 흙투성이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경험이라는 노련미까지 더해져 팀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한 차례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만큼 정상을 향한 재도전의 간절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정상에 있던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도전자의 입장만 된 것이다.
배영수는 "오랜만에 밥값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한마디다. 하지만 선동렬 감독은 배영수에 대해 "우리팀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투수 중 하나다. 경험이 많다는 점을 높이 산다"며 그의 경험과 노련미에 큰 신뢰를 보냈다. 박한이도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팀이 이겨서 좋다"며 개인보다 팀을 우선삼았다. 그는 좋은 타격감각에도 불구하고, 잡아당기기만 하지 않고 두 차례나 밀어치기로 외야 희생플라이를 만들었다. 팀을 위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타격이다.
푸른 피로 섞여있는 배영수와 박한이. 언제나처럼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 있어 삼성의 정상을 향한 발걸음도 가벼워보인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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