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닝신문/OSEN=최아름 기자] “특별한 날에 좋은 와인을 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을 마시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영화 ‘사이드웨이’에 나오는 대사다. 반짝이는 글래스에 찰랑이는 붉은빛 와인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와인만큼 로맨틱한 액체가 또 있을까. 무주와 와인이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다. 무주하면 떠오르는 건 과문한 나에겐 스키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웬걸, 무주는 머루향 가득한 하나의 커다란 와이너리였다.?

▲해발 900m 고원에 와이너리
무주에는 스키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하는 머루와인 탄생지가 바로 무주다.?
‘샤또 무주’는 해발 900m 고원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차에서 내려 운동 삼아 걸어가다 보면 이국적인 이정표와 흰 건물이 시선을 잡는다. 그리고 그 앞에는 드넓은 머루 밭이 펼쳐져 있다. 가만, 그런데 ‘머루’가 뭘까? 머루는 야생포도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알이 작고 껍질이 두꺼워 와인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게다가 항암 효과도 포도의 10배나 좋다고 하니 참 기특한 과일이다.?
이 와이너리에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인심 좋은 주인 덕에 와인 시음 시간을 가졌다. 샤또 무주의 와인은 크게 스위트, 드라이, 클래식으로 나뉜다. 그리고 업체 공동 브랜드인 로제 스위트가 있다. 스위트 와인은 이곳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인기 상품이다. 드라이 와인은 기름기 많은 음식과 먹으면 좋단다. 로제 스위트는 불어로 분홍색을 뜻하는 로제와 영어 스위트의 합성어로 꿀의 달콤함을 그대로 담은 와인이다. 이제 와인을 즐길 차례. 먼저 눈으로 그 신비한 빛깔을 감상한다.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색상과 투명함을 천천히 바라본다. 숙성된 머루향도 가만히 맡아본다. 그리고 조심스레 들이켜 와인을 씹어본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술을 못하는 기자에게도 거부감 없이 달달하게 넘어간다. 머루향에 취해 와인을 너무 들이킨 탓일까. 뺨이 어느새 와인빛으로 물들었다.
▲비밀의 문 지나 와인터널 속으로
와인터널로 가는 길은 꽤나 꼬불꼬불하다. 적상산 중턱에 있는 와인터널은 총 길이가 579m나 된다. 이 중 270m가 개방돼 있고, 나머지 300여m는 와인 저장고로 쓰인다. 원래 양수발전처 작업터널였던 곳을 리모델링했다. 작년 반딧불축제 때만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전국에서 손님이 모여들어 관광지가 됐다.
‘비밀의 문’이라고 쓰여진 입구에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그 커다란 입이 어서 오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비밀의 문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니 으스스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비밀의 동굴이라도 들어온 기분이다. 안쪽으로 깊숙이 길이 나 있어 그 끝이 어디인지 까마득하다. 간간이 켜있는 노란 불빛들이 운치를 더한다. 길 양쪽에는 와인병과 오크통이 즐비하다. 이 곳에 약 2만여 병의 와인들이 내공을 쌓고 있다. 차량이 드나들던 동굴이라 그런지 길이 매끄럽다. 입구에서 270m 걸어 들어간 터널의 끝에는 와인바가 있어 시음과 판매가 이뤄진다.?
▲내가 빚은 도자기 와인잔
도예원 앞에 솟은 무성한 잔디 위에 작품들이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개성들이 넘친다.?이곳에서는 ‘나만의 도자기 와인잔 만들기’?체험이 가능하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만져보는 차디찬 흙의 감촉. 흙을 정성스레 만져서 잔 모양을 내고 그 위에 각자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생각 없이 그렸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집중이 됐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다들 꽤나 진지한 모습이 왠지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품 하나를 만들고 나면 마치 내 자식을 낳은 기분이랍니다”라고 말하는 지도교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관광객들이 만든 작품은 초벌에 재벌을 거쳐 구워진다. 그만큼 천천히, 정성을 쏟는다는 의미겠지. 완성된 작품은 집으로 배달해 준다. 그 과정이 약 두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 어느 날, 예고없이 배달된 도자기 와인잔을 보며 무주를 추억할 그날이 기다려진다.?
arum@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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