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에 찍히는 구속보다 체감효과가 더욱 컸던 그들. 두 '돌직구 투수'들의 한국시리즈가 더욱 궁금한 이유다. SK 와이번스 좌완 전병두(26)와 2년 간의 재활을 마치고 새 유니폼으로 한국시리즈 마운드를 밟는 삼성 라이온즈 우완 구자운(30)의 볼 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3일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5차전 종료와 함께 발표된 한국시리즈 엔트리. 주목할 만한 점이 많지만 이 가운데 선발-계투로 활용이 가능한 전병두와 삼성 이적 후 2년 간 어깨 재활에 힘쓰다 방출 위기에서 살아난 구자운의 활용도에 집중할 만 하다.

특히 이들은 두산을 거쳤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2003년 두산에 2차 1순위로 입단했던 전병두는 김경문 감독이 묵직한 볼 끝을 높게 사며 '깜짝 선발' 카드로 종종 기회를 얻던 투수지만 2005시즌 다니엘 리오스의 반대급부로 KIA 유니폼을 입은 뒤 2008시즌 도중 SK로 트레이드 되었다.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 초 "지난해 초 다시 데려올 수도 있었다"라며 전병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구자운은 김경문 감독 취임 초기 마무리 노릇을 하다가 갑작스레 군입대한 뒤 어깨 부상 이후 자유계약 방출에 이어 두산에 새 둥지를 틀었다. 숫자로 찍히는 스피드보다 직구 볼 끝이 더욱 묵직했던 키스 폴크(전 보스턴-클리블랜드) 스타일의 투수였으나 병역의무를 마친 뒤 2007시즌 도중 부상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고 이듬해 수술 여부를 놓고 구단과 갈등을 벌이다 결국 방출 수순을 밟았다. 친정팀의 낙마 속에 이들은 현 소속팀의 유니폼으로 우승의 기쁨을 꿈꾼다.
▲ 삼성 좌타 라인 봉쇄, 전병두의 임무
지난해 선발-중계-마무리를 오가며 8승 4패 8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3.11의 호성적을 올리며 SK 투수진의 만능 열쇠가 되었던 전병두는 지난해 말 어깨 통증으로 인해 올 시즌 활약상이 불투명했다. 일각에서는 '일찌감치 시즌 아웃'이라는 예상이 나왔을 정도.
그러나 전병두는 예상과는 빨리 1군에 올랐다. 대번에 제 궤도에 들어서지는 못했으나 예상치를 웃돌며 지난 5월 19일부터 2군에서의 경기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팔스윙이 괜찮았다"라며 전병두의 이른 합류에 대해 설명했다.
7월까지 다소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이던 전병두가 제 페이스를 찾은 시기는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이었다. 8월 한 달간 10경기에 나서 1승 1홀드 평균 자책점 1.29를 기록한 동시에 21이닝 동안 단 2개의 사사구만을 허용했을 정도로 전병두의 투구는 깔끔했다.
알맞은 투구 밸런스를 갖추고 시원하게 왼 팔로 반원을 그리는 투구가 김성근 감독이 바라는 전병두의 모습. 굴레를 떨치고 한여름 몸을 일으킨 전병두는 9월 한 달간 3승 1패 평균 자책점 1.52로 활약하며 시즌을 27경기 5승 2패 1홀드 평균 자책점 3.06으로 마쳤다. 시즌 아웃 가능성까지 제기되던 투수의 성적임을 감안하면 분명 높이 살 만 하다.
선동렬 삼성 감독 또한 SK에 대해 "좌완 투수들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에이스 김광현과 전병두를 비롯해 이승호(20번), 정우람으로 대표되는 SK의 좌완 투수진을 타자들이 효과적으로 공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전병두의 삼성전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올 시즌 삼성을 상대로 1홀드 평균 자책점 7.20에 그쳤던 전병두는 최근 4시즌 동안 삼성 타선을 상대로 3패 1홀드 2세이브 평균 자책점 8.00으로 고전했다. 최형우에게만 10타수 1안타로 강점을 비췄을 뿐 박한이에게 9타수 4안타로 맥을 못췄고 채태인에게도 8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으로 약점을 보였다. 높은 실투를 얼마나 줄이면서 묵직한 볼 끝을 뽐내느냐가 관건이다.
▲ 베일 속의 구자운, 삼성 마운드의 비밀병기
시즌 중반만 하더라도 구자운은 올 시즌을 마치고 방출될 가능성이 큰 투수였다. 올 시즌 1군에서 단 한 경기(7월 8일 SK전 3이닝 1피안타 2실점) 출장에 그쳤으며 2군에서도 6승 5패 평균 자책점 4.59로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구위 회복세가 삼성 코칭스태프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140km대 후반의 공을 지속적으로 던지더라"라며 구자운의 구위 회복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식적인 실전 경기를 제외하고는 방출 예정 선수가 극적으로 구제되는 예를 찾기 힘들지만 팀 내 평가를 뒤집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까지 올랐다는 점은 구자운의 구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5경기가 모두 1점 차 박빙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믿을만한 투수들의 체력 소모가 극심했던 삼성임을 감안하면 구자운의 활약 비중은 그만큼 높아진다. 구자운은 두산 시절 선발과 중간 계투, 마무리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투수다. 큰 경기에서의 실전 감각은 변수지만 데뷔 초기 포스트시즌에서 자주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이다.
2004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를 끝으로 가을 잔치를 구경만 했던 구자운이지만 그의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 자책점은 2.13으로 뛰어나다. 한국시리즈서의 평균 자책점이 5.31로 다소 높은 편이지만 이는 경험이 부족하던 시절 완급 조절이 필수인 선발로 나섰던 탓이 컸다. 큰 경기에서의 경험이 선수에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 지 생각해보면 구자운이 포스트시즌 비밀병기로 활약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farinelli@osen.co.kr
<사진> 전병두-구자운.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