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년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연고지 홈팀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펼쳐지는 지방 구장에서 원정팀 응원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2010 포스트시즌은 달랐다. 많은 골수 팬들이 홈구장은 물론 지방 원정 응원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생업이나 학업을 뒤로 한 채 원정지까지 달려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고 응원까지 펼치는 일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홈팀 구단 팬들의 작은 야유에도 굴하지 않고 홈팀 관중속 섬이 돼 열렬하게 원정팀을 응원했다. 마치 중립지역이나 다름없는 서울 잠실구장이나 인천 문학구장에 온 것처럼 지방 구장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팀을 응원했다.
이런 현상은 올 시즌 들어 두드러졌다. 시즌 중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원정경기를 따라다니는 골수 팬들이 증가, ‘원정 응원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점덤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러더니 포스트시즌에서는 본격적으로 지방 원정 응원에 나서는 팬들이 많아졌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롯데 팬들의 성지나 다름없는 사직구장에 원정팀 두산 팬들이 3루측 관중석 곳곳에서 응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열렬한 부산 롯데 팬들의 함성에 묻히기는 했지만 두산이 선전할 때마다 이들 원정팬들은 소리치고 박수치며 두산 선수들을 응원했다.

원정 응원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3차전부터 대구 원정에 나선 SK 와이번스를 응원하기 위해 대구까지 수천명의 SK 팬들이 따라와서 열렬하게 응원을 펼쳤다. 대구구장 1루 관중석 가운데를 차지한 SK 원정팬들은 SK 치어리더들과 함께 SK 선수들 응원에 열을 올렸다. SK 구단에 따르면 2천여명의 팬들이 대구까지 따라와서 조직적으로 응원전에 나섰다고 한다. 일부 거친 대구 팬들의 야유가 있었지만 SK 원정팬들은 주눅들지 않고 SK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조직적인 지방 원정 응원 문화는 지난 해까지만해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작년 한국시리즈 KIA와의 광주 원정 경기 때도 일부 열성 SK 팬들이 광주무등구장까지 원정 응원에 나서기도 했지만 올해처럼 수천명의 응원단이 한 곳에 모여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응원전을 펼치지는 못했다. 구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이 지켜보는 데에서 원정팀을 응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원정 응원에 나선 팬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고 조직적으로 응원전을 펼치기에도 눈치가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원정 팀들은 그룹 계열사의 지점 등을 통해 구단표를 나눠주며 응원전을 유도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허사였다. 경기 시작전과 초반에는 같은 그룹의 야구단을 응원하다가도 경기가 열기를 뿜을 때 쯤에는 어느 덧 연고지 홈팀을 응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그룹 계열사 지방 직원들보다는 대부분 원정구단 홈팬들이 직접 지방구장을 찾아 자발적인 응원에 나서는 것이었다. 응원에 나선 열성 팬들은 대다수 젊은 층으로 평소 홈구장에서 갈고 닦은 응원 솜씨를 치어리더들과 함께 마음껏 발휘했다. 젊은 남성들 뿐만아니라 여성들도 대거 포함된 원정 응원단들이었다.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신세대 팬들답게 원정지에서도 자신의 팀을 소리쳐 응원에 나서고 있다. 지방 구단 홈팬들도 예전처럼 야유나 물병 등을 던지며 ‘테러’를 하기 보다는 서로의 응원 문화를 즐기는 태도로 변했다.
때문에 원정 구단 팬들이 적지에서도 마음 놓고 응원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받 구단들이 보안요원과 경찰력을 동원해 이들 원정팬들을 보호하는 배려도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확 달라진 지방 원정 응원 문화에 대해 야구 관계자들은 반가워하고 있다. 야구 관계자들은 “정말 놀라운 현상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야구장의 달라진 관중 트렌드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야구장을 찾는 홈팬은 물론 원정팬들 가운데 여성팬과 젊은 팬들이 많아지면서 응원 문화도 달라지고 있는 듯 하다”고 달라진 응원 문화의 원인을 진단했다.
또 올 포스트시즌은 이전과 달리 입장권을 전량 인터넷 예매로 판매한 것도 달라진 응원 문화의 한 요소로 분석되고 있다. 아무래도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팬들이 올드 팬들보다 더 야구장을 찾을 기회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일부 골수 올드 팬들에게는 다소 섭섭한 일이다. 하지만 젊은 신세대 팬들이 대거 야구장을 찾으면서 응원 문화가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홈팬과 원정팬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것은 분명 성숙되고 있다는 증거로 야구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지방 원정 팬들이 많아지는 것은 지역 경제에도 작은 도움이 되는 좋은 현상으로 풀이되고 있다. 원정 팬들이 ‘먹고 마시고 자고’하면서 야구장 인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일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지방 구장들이 2만 5천석 이상의 구장으로 신축되면 이런 원정 응원 문화는 빠르게 자리잡을 전망이다. 낡고 비좁은 지방 구장을 하루 빨리 현대식 구장으로 신축하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타당성을 얻은 올 포스트시즌 원정 응원이었다.
sun@osen.co.kr
<사진>2010 한국시리즈 3차전부터 대구구장 원정에 나서 마치 인천 문학구장에서 처럼 조직적으로 응원전을 펼친 SK 와이번스 응원단. 달라진 지방 원정 응원 문화를 대변하는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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