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참을 수 없었던 아쉬움 그리고 발걸음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0.10.20 10: 03

'푸른피의 전설' 양준혁(41)의 18년 야구 인생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삼성이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SK에 2-4로 패하며 그의 프로 인생은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양준혁은 지난 9월 19일 은퇴식을 해 더이상 경기에 뛰지 못했다. 두산과 플레이오프 때 상대팀의 양해 덕분에 그라운드를 누비거나, 덕아웃을 지켰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SK는 냉정했다. 한국시리즈 26명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해 KBO 규정에 따라 덕아웃에서도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경기장 앞 세워진 버스에서 TV를 통해서 지켜봤다.
몸은 그라운드도, 덕아웃에서도 떨어졌지만 마음은 그라운드와 덕아웃에 있었다.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리기 전 양준혁은 분주했다. 어쩌면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한국시리즈 4차전에 앞서 후배들의 훈련을 도왔다. 특히 후배 채태인과 박석민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하며 3연패로 맘 고생을 하고 있을 후배들을 격려했다.

19일 경기 전 "오늘도 TV에서 지켜 볼 겁니다"라는 양준혁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그러면서 양준혁은 "플레이오프를 하면서 우리 타자들이 체력이 많이 떨어진 듯 하다. SK 투수들의 유인구가 좋은데 우리 타자들이 말리는 바람에 볼카운트 승부를 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삼성은 1,2,3차전에서 SK 중간 좌완 투수들인 '큰'이승호, 전병두, '작은'이승호 등의 슬라이더 유인구에 말리며 범타에 그쳤다.
특히 SK 좌완 투수들을 공략해야 할 오른손 중심타자 박석민은 1차전에서 홈런을 날리며 12타석 9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심타자로서 1타점에 그치고 있다. 전날 2-4로 아깝게 패할 때, 박석민은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물러났다. 후배의 분발을 학수도대하는 양준혁은 이날 박석민에게 직접 공을 토스해주며 격려와 용기를 붇돋았다.
양준혁은 양손에 3개씩 공을 집고서는 오른손에 5개를 고이 들고서 왼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박석민에게 던져줬다. "석민아. 오늘 좋다. 일단 앞발을 딛고 허리를 돌려봐. 그러치! 지금 괘안타(괜찮다)"라는 사투리를 써가며 애정어린 조언을 했다. 40개 정도를 치고 나서 박석민이 인사를 하려고 하자 검지 손가락을 펴며 "한번 더"라고 던지자 박석민도 웃음을 지으며 배트를 다시 잡았다. "그래, 편안하게 돌려봐"가 양준혁이 박석민에게 건넨 마지막 멘트였다. 4차전에서 박석민은 4타석 3사사구 희생타 1개를 기록했다.
박석민의 타격 훈련을 돕기에 앞서 양준혁은 채태인에게 플라이 타구를 날리며 채태인의 긴장감을 풀어줬다. 양준혁은 3루 베이스 근처에 있던 채태인에게 "태인아, 잡아봐"라고 말하며 타구를 높이 쳐 올려 내야 플라이 타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채태인은 홈플레이트 근처에 뜬 공을 보고는 조금 뛰다 말았다. 그러자 양준혁은 "(채)태인아, 좀 뛰라(뛰어라)"라고 외쳤다. 채태인도 미안했던지 가벼운 웃음과 오른손을 들며 '한번 더'를 요청했다. 아마도 채태인은 '선배'양준혁의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 듯 보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준혁은 오늘도 덕아웃을 지키지 못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경기장이 아닌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삼성이 0-4로 뒤지던 6회 체면도 포기하고 3루측 삼성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KBO 규정상에는 상대 팀의 항의가 있을 경우 양준혁은 덕아웃에서 쫓겨나야 한다. 양준혁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미디어데이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당시 양준혁은 "나 때문에 시끄럽게 되는 것은 싫다. 규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양준혁은 마지막이 될 법도 한 경기를 그냥 밖에서만 지켜볼 수만 없었다. 퇴장을 당한다는 각오로 3루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했다. 덕아웃에 나타난 양준혁은 후배들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어떤 주문을 하기보다 곁에서 한번씩 껴안아 주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삼성은 9회 2점을 뽑아내며 2-4까지 추격했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경기 전 승리를 간절히 바라며 후배들의 훈련을 돕고, 경기 중에는 자존심마저 버리고 덕아웃에 나타났던 양준혁. 누구보다 이날의 패배가 아쉬울 그 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보다 후배들을 위로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췄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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