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뒤 삼성 선동렬 감독의 패장 인터뷰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선 감독은 "상대해 보니 SK가 강하긴 강하다"면서도 "그런데 SK는 선발투수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야구가 이상하게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이게 어떤 식의 야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한국식인지 일본식인지 미국식인지…"라고 말했다. 그만큼 SK의 마운드 운용이 독특했다는 뜻이다.
최근 4년간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명문구단 반열에 올라선 SK는 이처럼 언제나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구단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SK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야구로 삼성에 4전 전승을 거뒀다. 특히 철두철미한 마운드 운용으로 삼성의 예봉을 확실히 꺾어놓았다.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SK의 팀 평균자책점은 2.50이었으며 불펜 평균자책점은 1.45밖에 되지 않았다. 단기전에서는 SK 마운드를 깨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특징은 역시 선발투수들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SK는 한국시리즈 4경기 동안 선발투수들이 모두 5회를 채우지 못했다. 1차전 김광현이 4⅔이닝을 던진 것이 최다이닝이다. 선발이 단 8⅓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불펜이 2배가 더 많은 18⅔이닝을 던졌다. 4승 모두 구원승이었고, 6개의 홀드와 3개의 세이브가 더해졌다. 전형적인 김성근식 불펜야구가 단기전에 더욱 위력을 떨치며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비단 SK뿐만이 아니다. 이번 포스트시즌 14경기에서 선발투수가 퀄리티 스타트한 경우는 고작 3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한 경기에서 2명의 투수가 퀄리티 스타트한 것도 딱 1경기뿐이었다. 선발등판 28차례 중 5회를 못 채운 것이 20차례나 됐다. 그만큼 불펜싸움이 포스트시즌 싸움의 관건이었다. 지난해 KIA가 선발투수 중심의 마운드 운용으로 빛을 발했다면 올해는 SK의 불펜이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발을 일찍 내리고 불펜 중심의 야구를 펼친 것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포스트시즌 동안 어느 팀이든 승부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며 "다른 팀들은 빠르게 승부했지만 우리는 정상적인 템포로 갔다. 시즌 중에도 5~6회 이전에 선발을 바꾸곤 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SK는 선발투수 5회 이전 강판이 55차례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팀이었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SK가 선발을 일찍 내리고도 높은 승률을 보였다는 점. 선발을 5회 이전에 내린 55경기에서 SK는 27승28패 승률 4할9푼1리에 달했다. 나머지 7개 구단들의 선발투수 5회 이전 강판시 승률이 2할2푼8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SK 불펜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정우람 전병두 정대현 이승호(20번) 송은범 등 막강불펜이 시즌 내내 위력을 떨쳤다. 김성근 감독의 적재적소 투수교체도 적중했다.
SK는 4년 연속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마운드가 강한 팀이다. 김광현을 중심으로 한 선발진도 좋았지만 이를 능가하는 불펜진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에이스 김광현은 "중간-마무리 투수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철저하게 이기는데 초점을 맞추는 SK 불펜야구는 무려 4년째 롱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받는다. 부상으로 몇몇 투수가 빠져도 다른 투수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식이다. 지난해까지 채병룡과 윤길현이 불펜의 중심이었지만 그들이 없어도 SK 불펜은 강하다.
국적불명이라 불릴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김성근식 SK 불펜야구. 한국프로야구에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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