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는 정리대상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멤버다. 서서히 방출선수들이 발표되는 요즘 같은 계절에 그는 좋은 희망모델이다.
한화 12년차 좌완 박정진(34)에게 1년 전 가을은 쌀쌀했다. 프로 데뷔 후 기대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한 30대 중반의 베테랑에게는 언제 방출의 칼날이 날아들지 모르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선수들이 가는 일본 교육리그 명단에 포함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1년 후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깃들어있었다. 박정진은 "1년 전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롭다"며 웃었다.
세광고-연세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9년 한화에 1차 지명을 받으며 입단한 박정진은 강속구를 뿌리는 좌완 투수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세를 보이지 못했다. 2003년 57경기에서 6승7패3세이브11홀드 평균자책점 4.31로 활약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4시즌을 끝으로 군입대하는 바람에 3년간 공백기까지 가졌고 설상가상으로 어깨 부상까지 겹치고 말았다.

2008년 팀에 복귀했지만 부상회복에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렇게 1년씩 시간이 흘러갔고, 그도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었다. 2009시즌 종료 후 그는 정리대상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한대화 감독이 구세주였다. 한 감독은 오히려 어린 선수들로 꾸려지는 일본 교육리그에 박정진을 넣었다. "투구폼을 간결하게 만들고 오라"는 엄명을 받고 박정진은 조카뻘 선수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박정진은 "나이가 많다고 대충하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땀흘렸다"고 떠올렸다. 선수들이 인정할 정도로 러닝훈련에도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는 "원래 러닝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뒤처지는 것도 싫었다"고 말했다. 박정진은 "선수생활을 관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교육리그에 가게돼 마음을 비우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오랜 시간 연습하니 확실히 좋아지더라"며 지난 겨울을 되돌아봤다. 성준 투수코치와는 한 달 내내 맨투맨으로 붙어 투구폼 교정에 매달리기도 했다.

겨우내 흘린 땀방울은 배반하지 않았다. 시즌 중반부터 필승계투조가 된 박정진은 전반기 막판부터 팀의 마무리투수가 됐다. 올 시즌 56경기에서 2승4패10세이브6홀드 평균자책점 3.06으로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한대화 감독은 어느 순간부터 박정진을 위기 때마다 호출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가 됐다는 뜻이었다. 박정진은 "감독님이 믿어주신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큰 힘이었다.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1년 만에 정리대상자에서 핵심멤버로 재탄생한 박정진의 반전은 요즘 같은 방출의 계절을 맞이하는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좋은 롤 모델이다. 박정진은 "나이가 있는데 입지 같은 건 원래 상관없었다"며 웃었다. 그는 이제 입지를 떠나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가을잔치 진출이다. 박정진은 "포스트시즌을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웠다. 유니폼 벗기 전 저곳에 한 번 서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박정진은 프로 12년차지만 아직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
그는 "어떤 보직이 주어지든 열심히 하겠다. 마무리를 맡을 경우 최소 20세이브는 해야 팀이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1년 전 불안정한 위치에 있던 그는 1년새 팀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있었다. 방출 위기에 내몰린 30대 중반 베테랑들에게 박정진은 좋은 희망모델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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