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31가지 골라먹는 재미 주고 싶다"[인터뷰]
OSEN 봉준영 기자
발행 2010.10.27 08: 40

어떤 옷을 입혀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있다. 세상에 다시없을 천사도 됐다가 간담 서늘한 악마도 된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형사였는데 다음번에는 뒤통수친다. 남자 속에서만 살 것 같은 ‘의리남’인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도 내놓는 순정남이 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야말로 카멜레온 같은 배우 황정민. 이번에는 또 어떤 옷을 입었을까.
영화 ‘부당거래’로 또 한번 대중 앞에서 선 황정민. ‘각본쓰는 검사에 연출하는 경찰, 연기하는 스폰서’라는 타이틀을 내 건 영화 ‘부당거래’에서 황정민은 연출하는 경찰이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에 이어 세 번째 경찰에 도전했지만, 그가 이번에 입은 경찰 옷은 조금 찌질하다. 아니 찌질하다기 보다 세상에 풍파 속에 변질되어 가는 ‘우리네 그 누구’라는 것이 황정민의 설명이다.
- ‘연출하는 경찰’ 선뜻 이해가 안간다. 범인을 잡아야하는 경찰이 뭘 연출하는가.

▲ 흥미로운 영화다. 통통 튀거나 웃기는 것이 아닌 진중한 구석이 많다. ‘간 본다’는 느낌이랄까. 서로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서 속내를 숨긴 채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상에서도 나오지만 경찰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물먹고, 승진도 못하는 최철기의 모습은 싫으면서 좋은 척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사는 조직생활의 희생양이다. 그러다보니 인간관계에 더욱 중점을 두려했다.
- 세 번째 경찰 역에 도전했다. 배우로서 같은 직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위험이 있을 텐데도 굳이 ‘부당거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 가장 첫 번째는 대본이다. 느낌이 좋았다. 사실 요즘 영화들이 너무 말초적이고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인 것 같다. 그건 재미없지 않냐. 인생은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런 것 말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조금 더 스파크가 일고, 배우에 대해 생각하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 영화가 황정민이 원하는, 생각하게 하는 무언가를 주었다고 생각하나.
▲영 화를 보니 짠한 느낌이 들더라. 30~40대 남자들이 보면 짠하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와도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배우로 회사원들과는 다르겠지만, 나도 이 속에서 조직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느꼈던 것들이 영화 속에 묻어난다.
- 검사와 경찰, 스폰서 그리고 만들어진 범인이라, 그럼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 물인가.
▲ 스릴러는 절대 아니다. ‘드라마’, 사회를 그린 드라마라고 보는 게 더 가까울 것이다. 액션도 없고 피도 안나온다. 하나의 사건 때문에 벌어지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스릴러 영화 붐이 싫다. 매번 똑같으면 그게 과연 재밌을까. 아이스크림도 31가지 맛을 골라먹는데 영화가 한가지 장르만 있으면 되겠나. 나는 배우로서 골라먹는 재미를 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좀 더 다양한 영화로 관객의 눈높이를 높였으면 좋겠다.
- 배우 류승범과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사생결단’에 이어 세 번째다. 이제 눈빛만 봐도 통하겠다.
▲ 친형제나 다름없다. 죽이 정말 잘 맞는다. ‘사생결단’과 비슷하다는 말도 하는데 이야기가 다르고 인물이 다른데 어찌 같겠는가. 영화상에서 4번 밖에 안 만나지만 큰 임팩트가 있다. 그 부분에 대해 의논을 많이 했는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워낙 두터워 걱정 없었다.
- 지금까지 센 역할도 많이 했고, 순박한 소시민도 척척 소화해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역할에 매력을 느끼는 편인가.
▲ 다 만들어져 있는 인물은 재미없다. 남 일 같지 않은, 그런 인물을 좋아한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겨야 하는 것 같다. 먼나라  사람 같으면 되겠는가. 이번 최철기란 인물도 ‘나’ 자신 이거나 내가 아는 누군가.
- ‘부당거래’ 흥행은 얼만큼 될 것 같은가.
▲ 대박? 하하하. 사실 난 가늘고 길게 가는 걸 좋아한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다. 이제 그 부분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촬영이 끝났으면 내 몫을 다한 것이다. 흥행에만 너무 연연했으면 지금까지 배우 못했다.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3개월 동안 미친듯이 노력을 했는데 안되는 건 내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고 잘 못 만든 것이다. 내가 흥행배우가 아니라 날 더이상 안찾아주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 세상에 할 일은 많다.
bongjy@osen.co.kr
<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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