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가 보아, 동방신기에 이어 오리콘 차트 1위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여성 솔로가수에서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 여기서 여성 아이돌 그룹까지 한국의 인기가수들이 두루 일본 가요계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소녀시대는 이전의 ‘오리콘 1위’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의 한류는 인재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의 중심이동을 이뤘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며, ‘한류2.0’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류 1세대로 불리는 보아는 일본 시장에 데뷔한 일본의 신인의 자격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다른 일본 신인가수와 동등한 위치에서 일본어로 노래하고, 일본어로 말했으며, 오로지 실력 하나로 오리콘 1위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국적이나, 그가 한국에서 데뷔한 바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에서 주목한 것도 일본 시장에서 통할 만큼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가 우리나라 가수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는 뉴스는 지상파 3사 뉴스의 메인을 장식할 정도로 대단한 소식이었는데, 당시 가요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인재’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것에 포인트를 뒀다.
동방신기는 2세대로 볼 수 있다. 보아와 마찬가지로 일본 노래에 일본어를 구사했지만 한국적 특성이 조금 더 강화됐다. 이들은 일본의 기존 남성 아이돌그룹과는 달리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를 자주 보여줬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들이 한국 톱 아이돌그룹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게 됐다. 특출난 외모와 노래 실력으로 중무장한 이들은 일본 현지에 다른 한국 아이돌 그룹에 대한 관심도 끌어올려 지금의 한류 3세대들의 진출에 큰 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도 처음부터 ‘한국 스타’로 건너간 건 아니었다. 처음 2~3년 동안은 한국에서의 톱스타 생활과 일본에서의 신인 그룹 생활을 병행하며 혼란을 겪어야 했다. 멤버들은 "한국에서 가요대상을 타고, 다음날 무대도 없이 장판만 깔려있는 일본 대학 강당에서 유선마이크를 들고 '오정반합'을 부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이들은 ‘겨울연가’ 등 당시 한류드라마 붐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승부, 온갖 작은 무대를 하나씩 찾아다니며 스스로 성장했다.
결과는 대성공. 동방신기에 들어서부터는 오리콘 1위가 그리 큰 뉴스가 아닌 게 됐을 정도다.
소녀시대는 보아와 동방신기가 일궈놓은 텃밭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일본식의 노래와 퍼포먼스 없이 국내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수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소녀시대의 데뷔 싱글 ‘지니’와 두 번째 싱글 ‘지’는 모두 한국에서 빅히트한 곡으로, 소녀시대는 이 곡의 음악, 퍼포먼스, 스타일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본으로 건너갔다.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팬들이 마중을 나왔다는 것. 신인으로 시작해야 했던 보아, 동방신기와 달리 소녀시대는 공식 진출을 하기도 전에 막강한 팬층을 누리게 됐다. 보아-동방신기로 인해 한국 가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데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누구나 소녀시대의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
덕분에 소녀시대는 일본 진출을 위해 장시간 국내 시장을 비워야 하는 일은 없게 됐다. 보아,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기 위해 장기간의 프로젝트가 필요했지만, 소녀시대는 한국-일본 활동을 좀 더 긴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최근 일본에서 ‘지’를 발매했으면서도 국내 새 싱글 ‘훗’도 공개할 수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양국에서의 동시 활동은 서로 ‘실시간’으로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보아, 동방신기가 예쁘고 실력있는 ‘가수’에 초점을 맞춘 진출이었다면, 소녀시대는 이같은 그룹을 만들어낸 ‘콘텐츠 기획력’의 진출이라는 것.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 이후 현지 몇몇 연예기획사들은, 한국 대형기획사가 진행하고 있는 멤버 트레이닝 시스템에 큰 관심을 가지며 구체적인 실태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2~3년 후에는 한국처럼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대형 신인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작곡가들 역시 러브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의 노래 자체가 일본에서 통한다는 게 입증되면서, 한국의 댄스음악을 만든 작곡가에게도 자연스럽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 현재 꽤 많은 작곡가들이 일본 제작자들과 긴밀한 접촉에 들어선 상태다.
한 가요관계자는 “보아 개인의 일본 진출이 점차 저변을 확대해, 아이돌그룹, 노래, 퍼포먼스, 스타일링, 음반제작사의 기획력, 트레이닝 시스템까지 진출의 폭을 넓혀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특히 소녀시대의 성공은 한류가 연예인 개인이 아닌 콘텐츠 그 자체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진단했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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