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보완' 사제관계, 조범현 감독과 박경완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10.29 11: 22

"수술도 앞뒀던 만큼 힘들었지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부르셔서 아시안게임 이후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단순한 야구 모사꾼이 아닌, 초보 코치와 유망주로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구슬땀을 흘렸던 그 때를 기억하며 불혹을 코 앞에 둔 베테랑은 밝은 웃음을 보였다. 국내 현역 최고 포수 중 한 명인 박경완(38. SK 와이번스)이 조범현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과의 추억과 함께 금메달을 향한 열망을 비췄다.

 
1991년 전주고를 졸업하고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쌍방울 레이더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해 일약 현역 최고 포수 중 한 명으로까지 성장한 박경완은 다음 시즌이면 프로 생활 20년을 맞게 된다. 선수로서 분명 많은 나이지만 최근 4년 간 3번의 통합 우승을 이끌며 "SK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는 평을 받는 선수가 바로 박경완.
 
그저 가능성 있는 유망주 정도로 평가받던 박경완이 한 팀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은 시기는 바로 조 감독과의 만남 이후다. "1993년이었나 1994년이었을 거다. 조 감독께서 쌍방울 배터리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셨던 게 말이다"라며 운을 뗀 박경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또다시 웃는 등 힘들고도 자신에게 더욱 값졌던 그 날을 떠올리며 감회를 밝혔다.
 
"정말 놀러다닐 시간이 없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등학교 때 친구 만나러 잠깐 커피 마실 시간 외에는. 현역 시절을 마치고 곧바로 코치 생활을 시작하셨던 만큼 뭔가를 가르쳐 주고 바로 당신께서 장비를 챙겨입고 직접 보여주셨거든요. 제게 맞지 않는다 싶을 때는 저도 코치께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바뀐 방법을 몸에 익히기도 했구요".
 
초보 배터리코치였던 조 감독의 당시와 박경완은 '상명하복'이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로 얽혀있었다. 박경완은 손수 자세를 취하며 지도하는 조 감독의 노력에 힘든 가운데서도 훈련에 나섰고 조 감독 또한 박경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도방침의 수정 작업을 거친 것. 그리고 박경완은 1994시즌서부터 본격적인 주전 포수로 자라나 현대, SK를 거치며 우승도 이끄는 명포수로 자리매김했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지금 후배들이 '아우 죽겠어요'하는 모습들 보면. 흐~ 저는 다 겪어봤던 것이지 않습니까. 제가 전주 효자동이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그 때 절 가르치시려고 조 감독께서 저희 집 옆으로 이사를 오셨어요. 도보로 3분 밖에 안 걸리는. 근처 놀이터에서 또 죽어라 훈련하고. 정규 훈련 마치고 녹초가 되어서 집에 쓰러지면 또 특별훈련 나가야 했습니다".(웃음)
 
연습생이 번듯한 프로 선수로 성장해 오랜 시간 동안 현역 최고 포수 반열에 오르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었던 것. 올 시즌 여러 부상으로 힘들었음에도 쉴 틈 없이 팀의 통합우승 주역이 된 박경완은 자신을 이 자리까지 설 수 있게 해준 스승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았다.
 
"사실 많이 아픈 것도 사실이고 시즌 후 수술을 앞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 감독께서 지휘봉을 잡으셨고 좋은 후배들이 대표팀을 구축하고 있으니 저도 힘을 내야지요. 일본이 사회인 선수들로 대표팀에 나서고 대만 전력도 만만치 않아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서로 똘똘 뭉쳐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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