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 “내 베스트앨범 대신 故김현식 헌정앨범 낸 이유는..”[인터뷰]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0.10.29 15: 27

 가수 김장훈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인기부침이 극심한 연예계에서 그는 방송 펑크를 즐겨내는 사고뭉치로, 불우이웃을 위해 수십억을 쓴 기부천사로, 어려움을 겪는 동료 연예인 옆을 항상 지키는 의리남으로 20년을 지내왔다. 그뿐인가.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난 태안 앞바다선 두 소매를 걷어 부쳤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게는 핏대를 세웠다. 소주병을 들고 소극장 무대에 섰고, 수 만명이 모인 공연장에는 카이스트 팀에서 만든 로봇도 세웠다.
 이토록 흥미진진한 지난 20년을 보내온 김장훈은 역시 그다운 독특함으로 데뷔20주년을 기념했다. 자신의 20년을 축하하는 대신, 세상을 떠난 고 김현식의 20주년 추모 앨범을 내기로 한 것이다.

 체코 필하모니와의 작업과 미국 뉴욕에서의 후반 작업은 수년 전부터 김장훈이 아껴왔던 비장의 카드. 당초 자신의 베스트 앨범을 위해 이 ‘카드’를 모아왔던 그는 돌연 김현식 헌정 앨범을 내기로 결정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끌어부었다.
 최근 만난 김장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같은 음반을 기획, 발매했다고 말했다. 가요가 철저한 상품이 된 지금, 손익 계산에 서툰 이 아티스트의 ‘철없는’ 멘트는 참신하기까지 하다.
 “사실 나중에 아무도 날 기억 못해도 돼요. 기억해줘봐야 뭐할 거야.(웃음) 그래도 언젠가 내 노래를 오케스트라와 한번 새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거든요. 예전 노래를 들으면 너무 어설프니까. 내년 초 쯤 베스트 앨범을 예상하고 3년 전부터 체코 필하모니와 얘기를 해왔죠. 그런데 그냥 갑자기 ‘김현식으로 가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체코 필하모니 60인조 오케스트라가 이번 앨범에 참여했죠. 뉴욕에서 마스터링, 믹싱 해주신 엔지니어는 그래미 어워즈에도 노미네이트 됐던 분이래요.”
 김현식은 김장훈의 가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김현식이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세상은 제2의 김현식을 찾아나섰고, 그래서 주목받기 시작한 게 바로 김장훈이다. 김현식과 형동생하며 가까이 지냈던 데다가, 보이스컬러도 비슷해 김장훈은 한동안 방송가 등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물론 김장훈의 올곧은 성격에, 그 모든 관심이 달가울 리 없었다.
 “1991년도에 제 데뷔앨범이 나왔는데, 그때 마침 ‘내 사랑 내 곁에’ 신드롬이 일어난 거죠. 이미 떠난 형을 대신해 노래할 사람으로 날 자꾸 찾는 거예요. 근데 난 형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게 너무 싫고. 그래서 결국 어느 시상식 날인가. 방송 직전에 잠수탔잖아요. 또라이로 완전 낙인 찍혔죠.(웃음) 이후에 대학로 공연만 했는데, 다시 방송을 하기까지 7년 걸렸어요.”
 세월이 흐르고, 김현식이 점차 잊혀지자 김장훈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김현식을 다시 찾아나서기로 했다. 이제 김장훈이 김현식의 노래를 부른다 해도, 고인을 이용한다고 볼 사람이 없을 정도로, 김장훈은 홀로서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 김장훈이 자꾸만 김현식을 언급함으로써 고인이 잊혀지지 않게끔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현식이 형이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뭐가 돼 있을지. 현식이 형이 생전에 항상 나에 대해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음반관계자들이 날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먼저 찾아와서 계약을 하자고 했었고. 나야 뭐, 그때 완전 ‘독고다이’ 정신이었죠. 지하실에 처박혀 노래만 하고 있었거든요. 현식이 형 아니었음 난 그냥, 뭐.(웃음)”
 총 6억원이 들어간 이번 앨범은 이렇게 오롯이 그의 개인적인 마음에서 시작됐다. 형에 대한 미안함, 후배가수로서의 의무감 등이다.
 “앨범 제목이 ‘레터 투 김현식’이에요. 제작비가 많이 들었죠. 우표값이 그렇게 든 거지. 부담감은 없어요. 어차피 내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된 앨범인데요. 김현식의 굴레를 싫어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김현식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떠나는 날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안울었어요. 이제 이 앨범으로 조금이나마 그가 덜 쓸쓸하고 외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는 이번 앨범에 김현식의 명곡 11곡을 수록했다. 가사를 따로 보지 않고도 이 곡들을 모두 부른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완창, 그대로 앨범에 실었다.
 “요즘 노래 이상한 게, 가수가 1절과 2절을 똑같이 부르잖아요. 2절쯤 되면 힘들만도 한데. 그게 기계로 자꾸 끊어부르고 잘라 붙여서 그런 거잖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그거 되게 이상한 거예요. 그죠? 난 그냥 완창으로 부르고, 그대로 녹음했어요. 그래서 1절과 2절 감정이 달라요.”
 언젠가 먼 훗날, 김장훈을 기념하는 앨범이 나온다면 타이틀은 뭐가 될 수 있을까. 그는 고민하지 않고 ‘노래만 불렀지’를 꼽았다.
 “그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가장 나다워요. 내 인생이 진짜 그랬거든요. 소중한 사람이 떠나던 날도 노래했고, 집에 차압딱지 들어와도 노래했고, 추석 크리스마스 전부 혼자 노래만 했으니까요.”
 김장훈은 오는 11월1일 발매되는 ‘레터 투 김현식’ 앨범에 대해 최근 전문가-비전문가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20년 가수생활만에 처음으로 다른 스케줄 없이 오로지 앨범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작업인 만큼 그 결과에 대한 기대도 크다.
 “내 것이 아니다보니까 진짜 열과 성을 다했나봐요. 이제야 그동안 내가 앨범을 어떻게 냈던 거지? 싶더라니까요. 모니터 결과를 보니까, 내가 앨범 10장만에 처음으로 명반을 내는구나, 하더라고요.(웃음)”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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