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좌완 계투로 뛸 사람이 없더라구요. 뒤에서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어야지요".
선발이 아닌 좌완 계투 보직이 유력한 상황. 그러나 너무도 중요한 임무인 만큼 허투루 생각할 수도 없는 만큼 주장은 긍정적인 사고로 대회 개막을 기다렸다. '봉타나' 봉중근(30. LG 트윈스)이 이제는 탄탄한 허리의 한 축이 되겠다는 각오다.

올 시즌 초반 팔꿈치 통증으로 어렵던 와중에서도 10승 9패 평균 자책점 3.58을 기록하며 제 몫을 해낸 봉중근은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최고령 박경완(SK)이 편하게 투수 리드에 힘을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의 리더십이 없다면 불가능했던 선택.
그에게 대표팀에서의 경험은 소중하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계기로 미국 외유를 마치고 국내 무대로의 유턴을 결심했던 봉중근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지난해 WBC에서는 4경기 2승 무패 평균 자책점 0.51이라는 대단한 쾌투를 선보이며 '봉의사'로까지 격상되었다.
하위권에 오랫동안 머무는 팀의 외로운 에이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봉중근이 명성을 드높일 수 있던 데는 바로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봉중근은 대표팀 선발에 대해 크나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
"때로는 모진 선배가 되겠다"라는 생각 속에 대표팀 주장직을 맡은 현재. 봉중근은 일단 동료들의 기를 살리는 주장 노릇을 하고 있다. "(류)현진이가 한국 시간 휴대전화로 알람을 맞추는 바람에 아침부터 너무 일찍 깨고 말았다"라며 웃은 봉중근이지만 "공이 좋아졌다"라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13일 대만전 선발 출격이 유력한 후배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고 있기 때문.
"생각보다 공도 잘 잡히고 날씨도 좋은 편이에요. 부산에서는 좀 날씨가 싸늘해서 솔직히 투수가 좋은 컨디션을 발휘하기 어렵지 않았습니까. 공인구도 미끄러워서 채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광저우 날씨에는 알맞은 것 같아요". WBC서 상대적으로 큰 공인구에도 거침없이 쾌투를 던졌던 만큼 아시안게임 공인구가 상대적으로 미끄러운 데 대해서도 긍정적 사고로 타파하려는 봉중근의 노력을 알 수 있는 한 마디다.
선발 에이스로 활약하던 입장에서 불펜에서 다급하게 몸을 푸는 '5분 대기조'로 나서게 된 봉중근. 보직이 강등되었다고도 볼 수 있어 서운할 법도 했지만 그는 계투로서 제 몫을 다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투수진을 살펴보니 좌완 계투 요원이 없잖아요. 그만큼 제가 몸을 던져 그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대회 들어서 '몸을 덜 푸는 바람에 못 던졌다'라는 구차한 변명이나 핑계는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컨디션 여하에 따라 투수진을 운용하겠다는 것이 조범현 감독의 책략. 그러나 팀 내 유일한 좌완 계투가 봉중근임을 감안하면 대만, 일본 등 강호와의 경기서 어떤 형태로 경기가 진행되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카드임에 분명하다. 만약 선발투수가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조기 강판할 경우에는 윤석민(KIA)과 함께 롱릴리프로도 활약해야 하는 투수가 바로 봉중근.
WBC서 봉중근은 강호 일본을 상대로도 거침없는 구위와 날카로운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하며 '대표 투수'다운 면모를 보였다. 팬들의 기대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 봉중근인만큼 '주장 투수'의 금빛 꿈은 더욱 알차게 커 나가고 있다.
farinelli@osen.co.kr
<사진> 광저우, 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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