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런 경기였다. 지난 19일 한국과 대만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조범현 대표팀 감독은 일찌감치 '괴물 에이스' 류현진(23)을 선발예고했다. 가장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카드가 바로 류현진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류현진은 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와 8⅓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었다. 젊은 나이에도 숱한 국제대회 경험을 통해 마운드를 지키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위기에 강한 투수
올 한해 류현진의 곁에서 함께 한 성준 한화 투수코치는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지만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성 코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 컨트롤이 되는 선수 아닌가"라며 "국내에서 준비할 때부터 착실히 훈련했다. 어린 나이에도 책임감이 남다른 선수이기 때문에 결승전에서도 아마 잘 던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 시즌 내내 어려운 팀 사정에도 묵묵히 제 역할을 소화한 에이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류현진은 그의 이름에 걸맞는 피칭을 보여주는 못했다. 당초 6이닝 이상 버틸 것으로 기대됐으나 4이닝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총 투구수가 98개로 많았기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했다. 5피안타, 3볼넷으로 대만 타자들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류현진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대만도 해외파까지 최고선수들로 구성된 만큼 2경기 연속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다. 류현진은 매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수비 실책과 아쉬운 야수선택도 겹쳤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피칭이었다. 직구 최고 구속이 최고 153km까지 나왔지만 아오티 구장 스피드건이 후한 덕도 있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가운데에서도 류현진은 마운드를 꿋꿋이 지켰다. 매이닝 위기 속에서도 '전가의 보도' 서클체인지업을 통해 대만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이날 류현진이 기록한 탈삼진 8개는 국제대회에서 기록한 자신의 한 경기 최다기록이었다. 특히 득점권 상황에서 대만 타선을 10타수 2안타로 잘 막았다. 득점권 피안타율 2할.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지는 에이스 피칭으로 대량실점을 막았다.
▲ 에이스의 책임감
류현진은 시즌 막판부터 아시안게임을 겨냥했다. 지난 9월2일 대전 삼성전을 끝으로 시즌을 접었다. 팔꿈치 피로누적을 느낀 류현진은 개인타이틀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휴식을 취했다. 시즌 종료 후 일주일만 쉬고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그는 "국가를 위한 일인 만큼 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언제든 괜찮고 준비해야 한다"며 묵묵히 대전구장에서 개인훈련 스케쥴을 소화하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다.
철저한 준비가 빛을 발했다. 지난 13일 대만과 예선 첫 경기에서 6이닝 5피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첫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는데 앞장섰다. 갑작스런 햄스트링 부상 속에서도 마운드를 지켰다. 5일 뒤 치러진 결승에서 다소 힘겨운 피칭이었지만 위기에서마다 실점을 최소화하는 탈삼진으로 대만 타선을 잠재웠다. 가장 부담스런 첫 경기와 마지막 승부에서 경기 초반 분위기를 내주지 않고 승리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값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이 던진 투수도 바로 류현진이었다.
아시안게임 전 류현진은 "국가대표는 무거운 짐이다. 꼭 좋은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이라며 약간의 부담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훌륭하게 그 부담을 이겨내고 또 한 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금메달을 따 기쁘다. 훈련 기간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코칭스태프께서 끝까지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선후배들이 힘든데도 열심히 뛰어준 데 대해 감사하다"며 선수단 전원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나 류현진의 공을 빼놓고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설명하기 어렵다. 류현진은 가장 강한 팀을 상대로 가장 오래 던졌다.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에이스 정신이 있었다. 광저우에서도 류현진의 에이스 책임감은 충분히 빛났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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