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종주국이라는 말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 17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첫날 경기가 끝난 뒤 유병관(48) 태권도 대표팀 감독이 꺼낸 얘기다.
지나친 비약이다 싶었던 그 발언은 20일을 마지막으로 태권도가 일정을 마치면서 현실이 됐다.

첫날 남자 71kg급의 장경훈(25)과 여자 46kg급의 황미나(20)가 일찌감치 첫 판에서 탈락하면서 고조됐던 위기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번 대회 총 16체급 중 12체급에 선수를 파견해 최소한 금메달 8개를 따겠다던 한국은 그 절반인 금메달 4개를 손에 쥐는 데 그쳤다. 그 외에는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가 수확의 전부였다.
▲ 종합은 1등...남녀 1위는 이란과 중국
그 동안 한국은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자랑해왔다. 그럴 만했다. 태권도가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대회부터 금메달 싹쓸이를 해왔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언제나 한국의 대표적인 금밭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아니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금4, 은2, 동4)과 이란(금3, 은2, 동4)을 제치고 6회 연속 종합 우승은 지켰다.
그러나 남자(금2, 은3)는 이란(금3, 동1), 여자(금2, 은1, 동2)는 중국(금4, 은1)에 사상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특히 이란에 1위를 뺏긴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전자 호구가 시행된 이후 한국에 진 적이 없다'는 주장해왔던 이란의 발언에 힘이 실리게 됐기 때문이다.
▲ 태권도의 부진은 왜?

사실 이번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태권도의 부진은 예감됐다.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풍부하지만 몇 가지 악재가 산재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대회의 이슈로 떠오른 전자 호구.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전자 호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한국이 이란에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전자 호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과 달리 이란은 전자 호구를 4년간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아시안게임에 사용된 전자 호구(라저스트)는 한국이 사용하지 않던 제품이다. 한국은 KP&P라는 힘을 중시하는 전자 호구를 선발전에서 사용해왔기에 그 차이는 컸다.
게다가 타격 면적이 중요한 라저스트 전자 호구의 사용이 지난 9월 확정된 것도 치명타였다.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부진의 이유로 전자 호구를 거론한 이유다.
출전 선수 중 절반 이상이 신예라는 것도 문제였다. 평소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변수가 많았던 이번 대회에서는 악재였다. 첫 국제대회에 긴장한 선수들이 전자 호구까지 적응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이성혜(26), 허준녕(23)이 베테랑의 자존심을 살려 금메달을 따내지 않았다면 노골드의 위기로 몰릴 수도 있었다.
이외에도 출전 일정이 제멋대로 바뀌거나 미끄러운 바닥 재질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악재였다. 특히 여자 태권도 간판스타 권은경(25)은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기권하기도 했다.
▲ 해결책은 무엇?

유병관 감독은 일련의 사태에 해결책으로 '초심'을 강조했다. 태권도 종주국이라는 자존심보다는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력 향상의 핵심은 전자 호구로 보인다. 지난 2008 세계태권도선수권부터 전자 호구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늦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더군다나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전자 호구가 사용이 예정된 상태다. 그 호구로는 이번 대회에서도 사용된 라저스트 제품이 유력하다. 올림픽까지 이란의 강세가 이어질 수도 있다.
유병관 감독은 "만약 올림픽에서도 이 전자 호구가 쓰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루 빨리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태권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셈이다.
stylelom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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