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스틸이었다. 손은 건드리지 않고 공만 툭 건드렸다. 이보다 더 확실한 스틸은 없었다. 그때 난 데 없이 휘슬 소리가 울렸다. 심판의 시그널은 파울.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고의 스틸이 될 수 있었던 그 장면은 결국 한으로 남고 말았다. 동점이 될 수 있었던 그 스틸이 파울로 돌변하면서 여자농구의 꿈도 물거품됐다.

임달식 감독이 이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대표팀이 금보다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지난 25일 밤 광저우 인터내셔널 스포츠 아레나에서 열린 중국과의 여자농구 결승전에서 한국은 64-70으로 분패했다.
종료 9초 전 이미선이 환상의 스틸을 해냈지만 파울 판정으로 지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16년 만의 금메달도 물 건너 갔다. 비록 편파 판정으로 좌절했으나 여자농구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정신력으로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사실 한국 여자농구에 쉽지 않은 대회였다. 지난 10월 체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영광은 잠깐이었다. 8강의 일등 공신이었던 정선민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전주원 최윤아 김정은 등 핵심선수들이 모두 부상으로 빠졌다.
게다가 대회 직전 예기치 못한 일부 구단들의 대표팀 차출 거부로 삐걱거렸다. 훈련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며 광저우로 넘어갔다. 광저우에 온 뒤에는 김지윤 하은주 박정은 이미선 등 주축 선수들이 하나같이 부상에 허덕이며 우려를 샀다.

그러나 한국 여자농구는 강했다. 예선에서 중국에 석패했지만 2승1패를 거두며 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한 뒤 하은주의 부상 투혼으로 일본을 대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객관적인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은 투혼을 불살랐다. 높이의 열세에도 몸을 날리는 투혼과 정신력으로 끈질기게 추격하며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외곽슛이 좀처럼 터지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추격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어이 종료 직전 턱밑까지 따라붙는 데 성공했으나 한 순간 휘슬 소리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비록 은메달에 만족하게 됐지만 여자농구는 미래를 확인했다. 변연하는 정선민이 빠진 대표팀에서 명실상부한 에이스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은주는 부상 속에서도 골밑을 지키는 투혼으로 중국의 높이에 맞섰다. '스무살 막내' 김단비는 향후 여자농구를 책임질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확인하며 세대교체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임달식 감독은 "심판이 경기를 결정지었다. 멋진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100% 최선을 다했다"고 선수들의 투혼에 고마움을 표했다.
최악의 조건에도 한국 여자농구는 특유의 악착 같은 승부근성으로 모든 악재를 극복했다. 마지막 순간 휘슬 하나에 무너졌지만 태극낭자들은 금메달보다 더 값지고 빛나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waw@osen.co.kr
<사진> 광저우=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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