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다 문드러질 지경입니다. 이런 치욕은 28년 만에 처음입니다".
한국 레슬링의 금맥이 끊어졌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레슬링 관계자들은 26일 마지막날 경기서 여자 대표들까지 결승 진출에 실패하자 고개를 숙였다.
지난 21일 금메달을 자신했던 정지현(27, 그레코로만형 60kg)을 시작으로 최규진(25, 그레코로만형 55kg)과 김현우(22, 그레코로만형 66kg)가 예상 밖의 부진을 보이면서 시작된 위기설이 끝내 노골드의 치욕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번 대회 남자 14체급(그레코로만형 7+자유형 7)과 여자 4체급(자유형 4)에 출전해 최소한 금메달 4개를 자신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아시아선수권 호성적을 바탕으로 부활을 꿈꿨던 레슬링은 다시 한 번 바닥으로 추락했다.
▲ 종합 8위...이란은 金만 7
한국 레슬링의 추락이 더욱 충격적인 까닭은 그 만큼 그간의 활약상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레슬링을 지배해왔다. 한국이 지난 6개 대회에서 거둔 금메달이 47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대회 당 8개에 가까운 수치니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그 반대였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은메달 3, 동메달5이 전부.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한 박상은(22, 자유형 66kg), 배미경(26, 자유형 72kg)이 입상해도 동메달이 7개로 늘어날 뿐이다. 종합 순위는 8위로 밀려났다.
그런데 국제무대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던 이란은 금메달만 7개를 따내면서 당당히 종합 1위로 올라섰다. 우리가 우습게 보던 일본도 금메달 2개를 따내면서 종합 2위가 됐고, 북한도 여자 자유형 48kg급의 서심향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종합 7위로 추월했다. 방대두(56) 레슬링 대표팀 감독이 입을 닫을 만했다.
▲ 레슬링의 부진은 왜?

이유없는 추락은 없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한레슬링협회는 낙관적인 희망을 내놨지만 일부에서는 불안한 시선을 내비치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악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레슬링의 국제 경쟁력 상실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아시아선수권에서 선전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이란과 카자흐스탄 등 아시안게임 경쟁국들에 세계선수권 우승자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에 우려가 제기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경기 결과에서 바로 드러났다. 최규진, 정지현, 이세열(20, 그레코로만형 84kg), 이재성(24, 자유형 84kg) 등이 줄줄이 이란에 패했다. 한 관계자는 "이란이 몸집이 달라졌다. 힘에서 밀리니 이길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기술 노출도 문제였다. 분명히 레슬링은 뻔히 아는 기술을 갈고 닦아 알아도 막지 못하도록 만드는 종목이다. 그러나 비슷한 실력에서 상대의 기술을 정확하게 파악할 경우 어려운 경기를 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대회가 그랬다.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이 모두 강호에 분석되면서 너무나 손쉽게 패했다.
▲ 협회의 해결책은?

김학렬 대한레슬링협회 사무국장은 해결책으로 '내부 경쟁'을 제시했다. 레슬링이 가지고 있는 저력 자체는 훌륭한 만큼 다시 치열한 터 닦기만 마친다면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기량 면에서는 기존 선수들을 뛰어넘는 선수들이 즐비한 만큼 내부 경쟁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단 이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실력이 기준이 돼야 한다. 그 동안 레슬링에서는 일부 인맥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됐었다.
또한 선수들이 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감량 대비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레슬링은 유럽의 강호에 대항하는 방책으로 2체급 이상을 감량하는 방식을 써왔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감량에 실패할 경우 제 기량을 유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김기정 대한레슬링협회 전무이사는 "이번 대회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금메달과 격차는 종이 한 장의 차이였다. 우리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다시 금맥의 부활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믿어 달라"고 전했다.
stylelom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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