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밭으로 평가받으며 효자 종목 역할을 해 온 4대 격투기 종목의 부침이 극명했다. 유도는 그동안 이어져 오던 부진 탈출에 성공했지만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태권도는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며 부진했고 레슬링 복싱은 완전 몰락했다.
▲ '절치부심' 유도, 재도약 발판 마련
유도는 역대 최다인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의 7개에 1개 모자란 6개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종주국 일본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대항마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한국은 남자가 4개, 도하 대회에서 무관에 그쳤던 여자가 2개를 따내면서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3~4개 가량의 금을 예상했던 한국은 왕기춘 최민호 등 금메달 후보가 메달을 놓치고도 목표치를 상회하는 결과를 손에 쥐었다.

지난 9월 세계선수권에서 일본에 완패한 뒤 훈련 강도를 50% 이상 높여 아시안게임에 대비했다. 절치부심한 남자 유도는 금메달 4개로 일본(3개)를 능가하는 성적을 내놨다.
정훈(남자팀), 서정복(여자팀)으로 꾸려진 코칭스태프는 기술 유도를 통해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국제유도연맹(IJF)이 상대의 도복 바지를 잡거나 위장 공격을 펼치면 모두 반칙으로 규정하면서 지도나 반칙패가 급증했지만 우리에게는 불리하지 않았다. 힘보다 기술이 강한 한국 선수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한국은 이 때문에 불확실한 하체공격 대신 상체공격 중심으로 훈련을 해왔고, 이번 대회에서 적중했다.
▲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충격은 태권도였다. 한국 선수단은 태권도 전체 16개 중 12개 체급에 참가해 금메달 8개 이상을 노렸으나 금 4, 은 4, 동 2개의 성적표로 대회를 마쳤다. 종합 1위는 지켰으나 4년 전 도하 대회 때의 금 9개와 비교하면 종주국의 위상에 상처를 입을 만큼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전자호구 시스템이 변수가 됐고 이틀 전에 체급별 경기 일정을 바꿔 통보하는 등 홈 텃세도 있었지만 종주국의 자존심만 내세우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결국 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고교 3학년 이대훈이 폭발적인 모습으로 금메달을 선사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문제점은 많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지켰던 자존심이 광저우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 레슬링, 도전자로 위치 격하
한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레슬링을 지배해왔다. 한국이 지난 6개 대회에서 거둔 금메달이 47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대회 당 8개에 가까운 수치니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그 반대였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은메달 3, 동메달 6개가 전부. 28년 만의 노골들였다. 종합 순위는 8위로 밀려났다. 그나마 중국이 은메달 3, 동메달 4개로 한국보다 못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였다.
국제무대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던 이란은 금메달 7개를 따내면서 당당히 종합 1위로 올라섰다. 우리가 우습게 보던 일본도 금메달 3개를 따내면서 종합 2위가 됐고, 북한도 여자 자유형 48kg급의 서심향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종합 6위로 추월했다.

▲ 복싱, 이제 한국은 변방
복싱은 이번 대회에 남자 10명, 여자 3명이 출전했지만 은 3, 동 1개를 딴 4년 전 도하 대회 때보다 못한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번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복싱에서 부전승으로 얻은 '행운의 동메달'을 뺀다면 한국이 제 실력으로 따낸 메달은 남자 60kg급 한순철의 동메달이 유일한 셈이다.
복싱은 1954년 마닐라 대회 때 박금현의 금을 시작으로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56개의 금메달을 안겨줬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선 12체급 전 종목 석권의 신화를 쓰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한 복싱은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처음 노골드에 그친 뒤 2002년 부산 대회에서 금 3, 은 2, 동 5개를 따내며 부활하는가 했으나 2006년 도하 대회(은 3개)에 이어 이번 광저우에서도 또 다시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10bird@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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