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라는 이름 석자. 아직 충분히 존재감이 있었고 무게감도 있었다.
'국민타자' 이승엽(34)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오릭스 버팔로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승엽이 1년간 연봉 1억5000만엔(한화 약 20억4000만원)에 지난 1일 오릭스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2일 일본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고 OSEN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연봉 1억5000만엔에 플러스 옵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릭스 구단의 입단 공식 발표는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이승엽이 시장에 나오기 전에만 하더라도 5000만엔 정도로 전망됐던 몸값은 막상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책정됐다. 오릭스 입단설을 가장 먼저 보도한 <닛칸스포츠>가 예상한 1년 8000만엔보다 두 배 좋은 조건이었다.
이승엽으로서는 그간의 평가절하를 씻어낸 계약이다. 이승엽은 2008년부터 부진에 빠지며 요미우리에서 자리를 잃고 말았다. 연봉은 6억엔으로 일본프로야구 최고였으나 조금만 부진해도 비난 여론이 들끓고 기다려주지 않는 요미우리 분위기에서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요미우리에서 보낸 마지막 해가 된 올해는 제대로 된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덩달아 그의 존재가치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됐다.
하지만 이승엽이라는 이름값은 그냥 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16일 요미우리에서 퇴단할 때부터 이승엽의 행보를 둘러싼 움직임이 나올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먼저 움직였지만 물밑에서 오릭스가 발 빠르게 움직이며 이승엽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이승엽을 둘러싼 경쟁으로 몸값도 생각보다 높아졌다. 그만큼 이승엽의 존재는 매력적이었고 값어치도 컸다.
이승엽의 이번 계약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그가 퇴단한 외국인선수 중 특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한때 7억2000만엔이라는 일본프로야구 단일 시즌 역대 최고연봉을 받았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올해 단돈 4000만엔에 계약하고, 5억5000만엔을 받았던 터피 로즈도 2007년에는 4700만엔에 만족해야 했다. 그에 비하면 이승엽은 그들보다 나이가 훨씬 젊고 검증된 실력에 대한 재신임을 받았다.
한 일본 언론인은 "일본 팀들 중 이승엽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고 전망했으나 이승엽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았다. 그것도 5000만엔이 아닌 그보다 3배 많은 금액에 이뤄진 계약이다. 그는 이승엽에 대해 '자기 자신만의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 비주전선수'라고 언급했으나 오릭스는 이승엽을 중심타자 1루수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그에게 투자했다. 자기 것을 갖추지 않은 선수에게는 결코 투자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현역 은퇴와 국내 복귀를 거론하기도 했던 그의 섣부른 전망은 34세 이승엽에게는 어불성설이었다.
만족스런 계약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존재감을 재확인한 이승엽. "기회만 보장되면 30홈런은 충분히 때려낼 수 있다"는 평가는 일본 내에서도 유효하다. 연봉이 6억엔에서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1억5000만엔으로 대폭 깎였지만, 이승엽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스윙과 장쾌한 홈런으로 되찾겠다는 의지다. 숱한 드라마 같은 홈런을 쏘아올린 이승엽에게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는 언제나 믿으면 꼭 보답해 왔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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