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일본프로야구 한신 출신 재일교포 우완 투수 김대유(27)를 지난 2일 영입했다. 지난 2009년 한화 강병수 이후 2년 만에 다시 재일교포가 한국프로야구에 뛰어든 것이다. 프로야구 출범 초창기였던 1980년대 이후 재일교포 선수들의 활약이 갈수록 미미해졌다는 점에서 김대유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재일교포 선수들은 초창기 프로야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수 부족에 시달렸던 초창기 팀들은 재일교포 선수들을 대거 수급했다. 1983년 삼미 장명부는 427⅓이닝을 던지며 시즌 30승이라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웠다. 요미우리 출신 김일융도 1984~1986년 3년간 무려 54승을 거두며 김시진과 함께 삼성의 막강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리그 전체를 뒤흔든 메가톤급 파괴력을 과시한 것이다.
이외 해태의 초창기 우승시대를 열며 포수의 진가를 보여줬던 김무종, 1984년 이만수와 타격왕 싸움을 벌였던 홍문종, 1989년 최초의 재일교포 타격왕이 된 고원부, 3차례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OB 최일언 등이 뛰어난 성적과 함께 남다른 기술로 국내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프로야구에 연봉 1억원 시대를 연 것도 재일교포들이었다. 1985년 장명부가 1억484만원, 1986년 김일융이 1억1250만원, 1987년 삼성 김기태가 1억2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재일교포들의 활약이 이전에 못 미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1987년 삼성에 입단한 '부시맨' 김성길이 전천후 투수로 명성을 날렸으나 리그 전체를 좌지우지할만한 선수들이 없어졌다. 롯데가 1990년대초 기대를 갖고 영입한 김병수 김행희 홍순기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오래 못가 짐을 쌌다. 1994년 삼성 유니폼을 입은 좌타 외야수 김실이 쌍방울 이적 후 2할대 중후반 타율과 안정된 수비로 활약한 게 고작이었다.
2000년대 들어 재일교포 선수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2002년 한화의 부름을 받은 내야수 고지행이 2003년 삼성 이적 후 주전 2루수로 한해 활약한 것이 거의 전부. 같은 해 LG에 둥지를 튼 외야수 이일의도 주로 백업멤버로 2년간 활약하다 고국으로 돌아갔다. 2003년 LG 좌완 김진유도 3년간 1군에서 고작 6경기 등판에 그쳤고, 2006년 롯데 외야수 김용강은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이어 지난해 한화에 입단한 강병수는 1군 16경기에서 안타 하나 치지 못하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초창기보다 크게 성장한 가운데 재일교포 선수들이 전성기가 지난 시점에서 한국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 최근의 실패 요인으로 분석된다. 외국인선수 제도 등으로 굳이 재일교포 선수들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마저 없어졌다. 그런 점에서 2010년대 첫 재일교포 선수로 영입된 27살 젊은피 김대유의 활약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SK 사령탑은 역시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 감독이다. 최일언 김성길 김실 등이 김성근 감독 밑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과연 김대유는 어떤 활약을 보일까.
waw@osen.co.kr
<사진> 김일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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