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안도현 시인의<연탄 한 장>의 일부분이다.
3.7kg, 22개의 구멍이 뚫린 검은 연탄. 우리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있지만 소외 계층에게는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연탄이다. 특히 이맘 때 연탄 300장은 3달동안 겨울을 나는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반가운 선물이다.
3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동 근처 네 가정에 300장씩, 총 1200장의 연탄을 배달됐다. 네이트 웹툰 '스타 플레이어' 오정현(26) 작가와 그의 애독자 17명이 앞치마를 두르고 빨간 고무 목장갑을 끼고 함께했다. 오정현 작가는 지난 2009년 7월부터 네이트에 '스타 플레이어' 축구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밤새 내린 비로 영하 4도까지 떨어진 차가운 기온에 칼바람까지 매섭게 불었지만 연탄 봉사에 나선 17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에 바람까지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꽁꽁 얼었지만 얼굴에는 미소만 가득했다. 한 사람도 힘든 기색 없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연탄을 날랐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유승(26, 연세대 경영학과3) 군은 지난 11월 15일 '스타 플레이어' 웹툰 댓글에 '베플수×10원' 기부 행사를 실천했다. 유 군은 "큰 돈은 아니었지만 인터넷 상에서 작은 마음을 모아 실천하고 싶었다. 인기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냐는 악플도 들었지만 내 마음은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고 말하며 "이번 행사도 즉흥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실천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만화 보시는 분들끼리 작가님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됐음 했다. 반응이 좋은 만큼 한번 더 해보고 싶다"고 유 군이 말하자 곁에 있던 그의 친구 최동명(26, 연세대 경영학과4)군은 "야, 뭘 해도 좋은데 미리 말을 하고 하라"며 "3탄은 뭐냐"고 농을 던졌다.
최 군은 "이번이 2탄이구 싶었다. 계획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데 (유)승이는 그대로 옮긴다"며 "친구가 자랑스럽다"고 칭찬했다. 2주 후면 마지막 학기를 마칠 최 군. 취업 준비에 바쁠 텐데 봉사활동 할 생각을 어떻게 했냐는 말에 "당연히 해야 한다. 시험 기간도 아직 조금 남았고, 기회가 왔을 해야지 안 그러면 못한다"고 말하며 또 다시 연탄을 나르러 갔다.
취업을 하지 못한 대학교 졸업생도 사랑 나눔의 자리에 함께 했다. 8월달에 서울대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박재열(26)군은 "아직 취업을 못했다. 친구가 함께 하자는 말에 같이 와서 연탄도 나르고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며 "중공업 쪽으로 취업하고 싶은데…뭐, 잘 되겠죠"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즐겁게 일했다.

군 제대 후 연일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호규(25, 성균관대 법학과4)군은 전날 산타클로스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전에 기부행사를 통해서 실천하신 분이기에 함께 해보고 싶었다. 댓글 만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며 "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기에 돕는 게 당연하다. 힘쓰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해 함께 일하던 주변 친구들을 웃게 했다.
대학교 4학년 뿐 아니라 신입생도 있었다. 유승 군과 수업을 같이 듣다 친해진 이병섭(21, 연세대 경영학과1)군은 "솔직히 이런 시간은 처음이다. 인터넷으로 모여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하니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웹툰 작가 오정현 씨도 뜻 깊은 행사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어제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정말 좋다. 이렇게 사람들과 친해진 만큼 시간 될 때마다 자주 보고 싶다. 이번에는 저도 급하게 나왔는데 다음에는 좀 더 계획해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며 강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연탄이 좋아서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는 정지희(25) 간사는 "요즘 인터넷을 통한 팬클럽, 동호회, 대학교, 회사들에서 많이 참여하신다"며 "올해도 벌써 70%이상 배달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는 따뜻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탄 배달을 마칠 즈음 이들은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았다. 대부분이 대학생이었기에 큰 돈은 아니었지만 십시일반, 31만원을 모았다. 연탄 한 장에 650원. 1200장이었기에 총 78만원이었지만 31만원은 자원 봉사자들이 내고, 나머지 47만원은 기업에서 후원한다.
자원 봉사에 나선 17명의 마음이 어르신들에게도 전달된 것일까. 마지막 가정 김수복(58)씨는 "작년에도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밖에 나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 "이게 다 정이지 뭐, 감사하고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하며 일일이 학생들의 손을 잡고서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수고한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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