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가장 인상적인 무대를 꼽으라면, 단연 가인의 솔로 ‘돌이킬 수 없는’ 무대가 아닐까 싶다. 아이돌 가수가 일레트로닉 대신 정통 탱고를 선택한 파격, 맨발로 무대에 서 난이도 높은 안무를 소화한 대범함은 10월 초 음원차트 1위 ‘올킬’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한때 금융회사에 다니던, 친구 소개로 우연히 음반업계에 입문한 조영철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그는 올 한해 브아걸의 나르샤와 가인의 솔로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아이유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주인공. 막대한 자본 대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진검승부해 ‘백전백승’을 거뒀다.

그가 올해 히트시킨 곡은 모두 5곡이다. 가인-조권이 부른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를 시작으로, 나르샤의 ‘삐리빠빠’,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아이유-슬옹의 ‘잔소리’를 비롯해 최근 1위를 휩쓸고 있는 아이유의 ‘좋은 날’까지.
최근 만난 조 프로듀서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주는 훌륭한 ‘가족’들 덕분”이라며 웃음지었다.
- 아이유의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아이유는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아이돌 가수 같으면서도 포크 가수의 느낌도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이 대중에게 상당히 잘 통하고 있다. 대중이 가진 아이유의 호감을 유지하면서, 보다 더 세련되게 가려고 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히트메이커보다는 김형석, 윤상 등 깊이 있는 뮤지션과 손잡았다. 타이틀곡도 아이유의 가창력을 보여줄 수 있게 신경썼다.”
- 프로듀서의 역할은, 정확히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프로듀서는 전체 음반이나 가수를 기획하는 사람이다. 기획하는 사람이 곡을 쓸 수도 있고 가사를 쓸 수 있겠지만, 프로듀서의 정확한 개념은 음반, 가수에 대해 기획하고, 작곡가 섭외하고 어떤 비주얼로 어필할 것인지, 안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총괄하는 사람이다.”
- ‘돌이킬 수 없는’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고도의 전략 아니었느냐는 말이 많았는데, 사실 전략의 차원은 아니었다. 나도 그렇고, 우리 스태프들도 그렇고 예전부터 탱고를 좋아했다. 그런 음악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을 아주 예전부터 했는데, 그때는 브아걸이 없었으니까 엄정화나 이효리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 ‘돌이킬 수 없는’의 기획 과정을 설명해달라.
“우선 탱고로 가기로 결정은 됐고, 그 다음 탱고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곡가가 누굴까 생각하다가 제3세계 음악을 많이 하는 윤상을 떠올렸다. 당시 윤상은 미국 버클리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곡을 부탁드리고 8개월 후에 데모곡이 나왔다. 트랙이 정말 좋았는데, 단지 의미있는 음반보다는 흥행도 담보돼야 하니까, 멜로디를 추가 작업했다. 그래서 이민수 작곡가가 멜로디를 맡았다.”
- ‘아브라카다브라’도 지누의 트랙에 이민수 작곡가가 멜로디를 붙여 대박 났었다.
“외국에는 공동 작업이 흔하다. 물론 한명의 예술가가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것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시너지를 내는 것도 효과적이다. YG엔터테인먼트가 공동작업을 상당히 잘하고 있는 것 같다.”
- 조영철 프로듀서가 맡은 앨범은 이른바 ‘센’ 기획과 남다른 콘셉트가 있다.
“보통은 작곡가가 좋은 곡을 하나 써내면, 그 곡을 작사가한테 맡기고, 그렇게 곡이 완성되면 뮤직비디오를 만든다. 나는 그렇게 안한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패밀리가 있는데, 처음 데모곡을 받을 때부터 다 같이 모여서 고민한다. 작사가는 서사를 고민하고, 그 서사에서 안무를 떠올리기도 하고, 뮤직비디오 영상 콘티에서 가사를 구성하고, 멜로디를 고치기도 한다. 처음부터 모두가 감성을 공유하니까 보다 콘셉트가 명확한 것 같다."

- 가인의 맨발 무대는 누구 아이디어였나.
“가인이 직접 낸 거다. 여가수가 힐을 벗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짧아보일텐데.(웃음) 가인은 표현력이 좋고, 감도 좋아서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다.”
- 나르샤는 어땠나.
“파격을 좋아하는 친구다. 솔로가수가 자기 존재감을 심는 게 참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는 성공했다고 본다. 다만 곡 자체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 우리 예상과 좀 빗나가지 않았나 한다.”
- 처음 프로듀서를 맡은 곡은 뭐였나.
“브아걸의 ‘러브’가 처음이다. 이후 ‘어쩌다’, ‘마이 스타일’, ‘아브라카다브라’를 맡았다. ‘러브’ 때는 브아걸이 위기였다. 직전에 발표한 2집이 잘 안돼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보컬 3명의 음색이 다 다른데, 나르샤는 살랑살랑한 목소리였고, 가인은 허스키, 제아는 고음에 강했다. 브아걸의 강점은 미료라고 생각했다. 다른 팀에는 없는 정통 래퍼니까. 발라드만 하기엔 아깝다고 생각하다가, 빅뱅의 ‘거짓말’이 통하는 걸 보고 일레트로니카로 턴해보기로 결정했다.”
- 올 한해 가장 예상이 적중한 곡은 뭐였나.
“‘잔소리’다. 아이유가 이 노래 이전에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이 가수의 성공사례가 필요하다 싶어서 대중적으로 통할 수 있는 곡 스타일을 썼다. 슬옹과 호흡을 맞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 내년 계획은.
“브아걸 4집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브아걸과 작업을 일곱 번 했는데, 좀 다른 프로듀서의 다른 아이디어도 필요하겠다 싶어서. 아이유는 계속 할 듯하고, 나르샤의 ‘맘마미아’ 때 같이 활동했던 써니힐의 프로듀싱을 맡을 예정이다. 재능이 많고 준비 기간이 긴 친구들이라 기대가 크다. 언젠가 엄정화 누님과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지금보다 좀 더 약간 전위적인 느낌이 있는 쪽으로 가도 멋있을 것 같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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