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와 이야기하고 싶다"던 밥 펠러, 세상을 떠나다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0.12.18 07: 08

지난 4월 19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 4층, 한 노신사가 기자실에 앉아 클리블랜드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을 관전하고 있었다.
이날 클리블랜드 간판 타자인 '추추트레인' 추신수(28)가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포함해 맹타를 몰아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자 그 노신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그의 눈 속에서는 무언가 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듯 했다.
정확히 70년 전, 1940년 4월 16일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린 화이트삭스전에 선발 등판해 메이저리그 유일한 개막전 노히티트런을 달성한,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클리블랜드 경기를 볼 수 없는 '클리블랜드 전설' 밥 펠러(92)였다.

펠러는 지난 16일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난 4월 추신수 취재 차 클리블랜드에 방문한 OSEN은 밥 펠러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의 생을 재구성했다.
▲'1달러와 사인볼'이 계약금이었던 특급 유망주, 밥 펠러
펠러는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유망주로 소문이 자자했다. 1936년 클리블랜드의 단장이었던 사이 슬랩니카는 16살난 펠러를 보기 위해 한 걸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강속구에 슬랩니카 단장은 눈이 멀었다. 당시 클리블랜드 뿐 아니라 다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그와 계약하려고 서로 경쟁을 벌였다. 몇몇 구단은 클리블랜드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펠러는 고향 팀인 클리블랜드와 주저 없이 계약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의 입단 계약금이 고작 '1달러와 클리블랜드 단장 사인볼 1개'였다는 것이다. 펠러는 "사실이다. 나는 계약금으로 1달러와 클리블랜드 단장 사인볼 1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구를 하는 것이었다. 일단 내게 기회를 주면 그 이후로 내 가치를 증명하면 됐다. 그래서 돈은 상관하지 않았다"며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농장을 하셔서 부유했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서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ML 개막전 유일한 노히트노런 투수, 밥 펠러
밥 펠러는 지난 1940년 4월 16일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70년이 지나 90이 넘은 나이였지만 펠러는 당시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70년전, 시카고에서 경기를 했다. 현장에 부모님도 계셨다. 특별히 노히트노런을 의식하지 않았다. 2이닝을 남겨 놓은 순간 2루쪽에 깊은 타구가 날아갔다. 안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루수가 어렵게 잡아 1루에 송구를 했다. 내 생각에 거의 동시 타이밍이었는데 간발의 차로 아웃이 되었다" 오래된 추억을 돌이켰다.
이후 펠러는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지난 196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18년 동안 570경기에 등판해 266승 162패 279완투 44완봉승 21세이브를 기록했다. 3차례의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그는 완투형 투수였다. 그의 완투 횟수가 증명해 준다. 펠러는 1946년 생애 최고의 해를 보냈다.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정확한 숫자까지 기억해 냈다. 펠러는 "1946년 48경기에 출장했다. 선발은 42경기였다. 이중 36게임에서 완투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이닝을 던졌는데 부상은 당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1937시즌이었다. 상당히 춥고 비가 온 날이었다. 이날 경기를 던지고 나니까 오른쪽 팔꿈치가 아팠다. 그래서 몇 주 동안 공을 던지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선수시절 겪었던 부상의 전부"라고 기억했다.
펠러는 4가지 구종을 구사하는 '포치치'투수였다. 그는 "나는 상당히 빠른 볼을 던졌다. 각도가 꽤 큰 커브볼을 구사했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던졌다. 싱커는 던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2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한 밥 펠러
펠러는 지난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일어나자 군 입대를 자원했다. 최고의 야구 선수였지만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 해군에 입대했다. 2년여 군 생활을 마친 그는 1945년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그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입대를 결정했다. 내 나라, 내 조국을 구하는 것이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것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군 입대만 하지 않았다면 300승 이상 올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물론 300승 이상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1승, 2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내 나라가 더 소중했다"고 강한 애국심을 나타냈다.
▲"추신수와 대화를 하고 싶다"던 밥 펠러
지난 4월 19일 추신수는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이날 추신수가 거침없는 활약을 펼치자 펠러는 "추신수가 내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화이트삭스 전에서 만루홈런을 쳐 70년 전 나의 추억이 떠오른다"며 "추신수가 클리블랜드 야구팀의 선수라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클리블랜드 전설이 추신수를 칭찬한 것이다. 그러면서 펠러는 두 가지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추신수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팀 동료들과 매우 잘 지내고 클럽하우스에서도 항상 모범 적이라고 들었다. 앞으로도 클리블랜드와 함께 계속해서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가 첫 번째. 이어 그는 "경기장에서, 그리고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추신수를 본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그와 직접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 조만간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밥 펠러, "추, 돈을 아끼고, 친구를 소중히 하라"
펠러는 안타깝게도 살아 생전에 추신수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추신수에게 조언을 남겼다. 그는 '추신수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야구 기술적으로는 매우 훌륭해서 특별히 조언할 것이 없다"고 칭찬한 뒤 "돈을 아끼고 친구를 소중히 하라(Save Your Money, Save Your Friends)"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야구는 평생 가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는 평생 간다"며 "이 두 가지가 야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보통 메이저리그 취재 때 선수들 또는 관계자로부터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날 밥 펠러는 1940년 4월 16일 화이트삭스와 개막전 선발로 나서 공을 던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사인 종이를 건네며 "이름이 뭐냐"고 먼저 물었다. "사인을 받아도 되냐"고 되묻자 "당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종이에 사인을 해줬다. 그 자리에서 고맙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지만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한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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