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무엇인가.’
미국발 금융 위기 쓰나미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8년, 한국산업은행이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이하 리먼) 인수를 추진할 당시 비화를 담은 번역서 ‘대마불사(원제: Too Big To Fail, 한울 발행)’가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마불사’는 뉴욕타임스 금융 전문 기자 출신의 앤드루 로스 소킨이 당시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사 200여명과 가진 500시간 이상의 인터뷰와 방대한 관련 자료 조사를 토대로 긴박하게 전개됐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말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은 끝내 파산한 리먼의 회장실부터 결국 리먼을 버리고 AIG를 살리기로 결정한 미국 재무장관의 집무실까지 훑으며 미국 정재계 거물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금융위기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독자들이 마치 그때 그 현장을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소설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 독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은 산업은행과 리먼 측이 은밀하게 진행한 인수 협상 과정이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는 결국 불발됐으나 이후 크게 논란을 일으켰던 사안이다.
당시에는 파산 직전의 회사를 인수하려 했다는 이유로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가 국회에 불려가 여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으며 사퇴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에도 “산업은행이 리먼을 인수했으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세계 일류 투자은행을 인수, 금융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 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또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추진 움직임이 처음 드러난 것은 2008년 6월4일 미국의 유력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사화 되면서부터였다. 산업은행 등 당시 기사에 거론된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작업은 보도되기 수개월 전부터 진행됐으며, 기사는 리먼팀이 극비리에 방한, 서울에서 산업은행, 하나은행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한 시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사가 나왔을 때 리먼의 CEO 펄드가 정보가 새나갔다는 사실에 격분, ‘월스트리트 저널’을 상대하지 말라는 무리한 지시를 내리기 까지 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 민유성 총재와 펄드가 7월 29일 홍콩에서 극비 회동, 민 총재가 리먼 주식의 관반수를 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에 펄드 회장이 기분 좋아하는 장면도 묘사된다.
저자는 산업은행과 리먼의 협상이 결국 결렬된 이유는 막판에 펄드가 산업은행이 수용하기 곤란한 요구를 한 탓으로 그리고 있다. 8월 첫째 주 뉴욕에서 가진 미팅에서 펄드가 악성 부동산 자산 처리를 산업은행에 떠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리먼에서 준비한 기본 합의서에는 리먼이 산업은행에 무한정의 신용한도를 설정해, 즉 리먼을 위해 산업은행 자신의 대차대조표가 악화되는 것을 모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리먼 최고 경영진이 협상에서 보여온 태도에 불쾌한 심정을 토로한 민유성 총재는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고 회담장을 떠난다. 이에 펄드는 “지금 이대로 떠나겠다는 거요?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오?”라고 외친다. 사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현 미국 재무장관), JP 모건 체이스은행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등 미국 정재계 거물들이 펼치는 인간 드라마를 소설처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백그라운드, 네트워크 등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 그들이 내리는 고뇌에 찬 결단과 우유부단 등도 읽을 수 있다.
또 독자들은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이 CDO, CDS 등 새로운 금융 상품을 얼마나 남용하고, 어떻게 그것에 발목을 잡혔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스스로 수학을 잘하고 200명이 넘는 박사의 자문을 받을 수 있었던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도 CDO, CDS 등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대목도 나온다.
원서 제목 "Too Big to Fail"은 ‘너무 커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그 ‘믿음’이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나아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지난 해 미국에서 출간 돼 6개월 연속 뉴욕타임스 선정 경제경영서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저자인 앤드루 로스 소킨은 이 책으로 금융저널리즘 분야에서 권위있는 ‘제럴드 로브’상을 수상했다.
미국 MIT 박사 출신으로 홍콩과학기술대와 중국인민은행 대학원에서 금융체제비교론 등을 강의한 노다니엘씨가 번역했다. 가격은 3만6,000원.
/생활경제팀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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