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대마불사' 신화의 몰락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12.20 08: 25

“잘 들어. 즉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신청에 대비한 작업에 들어가야 해.” 엄청난 발언에 이어 잠시 침묵한 뒤 폭탄을 하나 더 던졌다. “메릴린치도 마찬가지야.” 그는 다시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AIG 도산.” 여기서 그는 한참 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골드만삭스의 도산도 고려해야 해.”(2008년 9월 13일 JP 모건 체이스의 CEO 제이미 다이먼이 경영진과 전화 회의 중)
2008년, 쓰나미처럼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의 내막을 상세하게 밝힌 번역서 대마불사(원제:Too big to fail· 한울 발행)가 출간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
‘대마불사’는 뉴욕타임스 금융 전문 기자 출신의 앤드루 로스 소킨이 당시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사 200여명과 가진 500시간 이상의 인터뷰와 방대한 관련 자료 조사를 토대로 긴박하게 전개됐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말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은 끝내 파산한 리먼의 회장실부터 결국 리먼을 버리고 AIG를 살리기로 결정한 미국 재무장관의 집무실까지 훑으며 미국 정재계 거물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금융위기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생하게 소설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현 미국 재무장관), JP 모건 체이스은행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등이 등장해 ‘인간 드라마’를 펼친다. 그들의 백그라운드, 네트워크 등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 그들이 내리는 고뇌에 찬 결단과 우유부단 등도 읽을 수 있다. 
기존에 출간된 금융위기 관련 책들이 금융 시스템 등 어려운 내용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거나 특정 회사나 특정 인물 중심의 단편적인 접근을 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독자들이 마치 글로벌 금융 위기의 현장을 최고 의사 결정자의 위치와 시각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독자들은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이 CDO, CDS 등 새로운 금융 상품을 얼마나 남용하고, 어떻게 그것에 발목을 잡혔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스스로 수학을 잘하고 200명이 넘는 박사의 자문을 받을 수 있었던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도 CDO, CDS 등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대목도 나온다.
원서 제목 "Too Big to Fail"은 ‘너무 커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그 ‘믿음’이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나아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이 새삼 눈길을 끄는 이유는 2년 전, 미국 월가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단순한 과거사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침체의 길에 들어선 세계 경제는 여전히 그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고 금융 위기 재발의 우려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최근 재정 위기의 수렁에 빠진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2010년 11월 한국에서 열린 G20회의에서 중요하게 다룬 의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마불사(TBTF)’ 문제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 독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은 산업은행과 리먼 측이 은밀하게 진행한 인수 협상 과정이다.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는 결국 불발됐으나 이후 크게 논란을 일으켰던 사안이다.
당시에는 파산 직전의 회사를 인수하려 했다는 이유로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가 국회에 불려가 여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으며 사퇴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에도 “산업은행이 리먼을 인수했으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세계 일류 투자은행을 인수, 금융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또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저자는 산업은행과 리먼의 협상이 결국 결렬된 이유는 막판에 펄드가 산업은행이 수용하기 곤란한 요구를 한 탓으로 그리고 있다. 8월 첫째 주 뉴욕에서 가진 미팅에서 펄드가 악성 부동산 자산 처리를 산업은행에 떠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리먼에서 준비한 기본 합의서에는 리먼이 산업은행에 무한정의 신용한도를 설정해, 즉 리먼을 위해 산업은행 자신의 대차대조표가 악화되는 것을 모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해 미국에서 출간 돼 6개월 연속 뉴욕타임스 선정 경제경영서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저자인 앤드루 로스 소킨은 이 책으로 금융저널리즘 분야에서 권위있는 ‘제럴드 로브’상을 수상했다.
미국 MIT 박사 출신으로 홍콩과학기술대와 중국인민은행 대학원에서 금융체제비교론 등을 강의한 노다니엘씨가 번역했다. 가격은 3만6,000원.  /생활경제팀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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