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 인터뷰] 정재훈, "내년 목표? 없는 게 목표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12.21 07: 04

"많이 아쉽지요. 포스트시즌에서 더 잘하려고 페넌트레이스 때 잘한 건데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정규시즌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도 그는 가을잔치서 내준 피홈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인지 못내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위해 뛰는 첫 시즌을 기다리며 다시 덤벨을 잡았다. '메시아 정' 정재훈(30. 두산 베어스)이 2011시즌 더 나은 활약상을 위해 굳게 다짐했다.

 
올 시즌 정재훈은 8승 4패 2세이브 23홀드(1위) 평균 자책점 1.73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두산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서 각각 2개씩 총 4개의 홈런을 내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페넌트레이스서 총 78이닝을 소화했으나 단 두개의 홈런 만을 내줬던 정재훈인만큼. 게다가 1경기, 1경기가 결정적인 단기전서 허용한 홈런이라 선수 본인의 충격파도 컸다.
 
"올해요. 많이 아쉽지요. 페넌트레이스서는 분명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자부합니다만 정작 포스트시즌서 부진했잖아요. 다들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활약하기 위해 시즌 때 좋은 성적을 올리는 건데 그걸 못했으니까". 지난 20일 잠실구장서 자율훈련에 열중하던 정재훈의 눈매에는 웃음 속 미련이 묻어나왔다.
 
▲ PS 4피홈런, "내가 당연히 막아야 할 순간 내준 것"
 
프로 3년차였던 2005시즌 깜짝 마무리로 발탁되어 30세이브를 획득,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세이브왕좌에 올랐던 정재훈은 올 시즌 홀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선수 개인으로서 두 번째 영예다.
 
고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즌 초부터 공헌도가 높은 투구를 펼치며 팀을 이끌었던 정재훈은 5월 초 어깨 통증으로 인해 약 열흘 정도 개점휴업 시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복귀 후에도 변함없이 믿음직한 활약을 펼쳤다. 9월 초 주전 마무리 이용찬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전열 이탈에도 그는 마운드서 팀을 추스르는 노릇을 했다. 기록 이상의 공헌도를 지닌 2010시즌이다.
 
특히 이용찬이 1군서 뛸 수 없게 된 이후로는 정재훈이 마무리 노릇을 해야 했다. 2위(22홀드)인 팀 후배 고창성과의 격차가 크지 않아 자칫 홀드 타이틀을 뺏길 수도 있었으나 그는 짖궂은 질문에도 개인보다 선수단이 먼저였음을 내세웠다.
 
"홀드 타이틀을 신경 썼냐구요? 전혀. 오히려 (고)창성이가 8월서부터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야 하는 것이 중요했던 만큼 태극마크를 달 수 있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용찬이 관련해서는…".
 
잠시 그는 말을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재훈은 이용찬과 전지훈련서도, 시즌 중에도 룸메이트로 동고동락한 사이였기 때문. 자신이 맡던 마무리 자리를 물려받아 순항하다 잘못을 저지르고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후배가 생각났기 때문인지 정재훈은 옅은 한숨을 뱉은 뒤 말을 이어갔다.
 
"오히려 용찬이의 전열 이탈이 계투 요원들을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포스트시즌 4피홈런에 대해) 그에 대해서 '용찬이가 있었더라면 네가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 상황은 만약 용찬이가 있었더라도 당연히 제가 던져야 했던 순간입니다. 제가 던져야 했던 순간 홈런을 내준 것이니 제 잘못이지요".
 
 
 
▲ 목표 설정, 오히려 부담될 것 같아
 
지난 11월 29일 정재훈은 동갑내기 아내 고주희씨와의 사이에서 첫 딸을 얻었다. 복순이라는 태명을 지닌 아이는 아직 진짜 이름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 "이름 몇 개를 놓고 고민 중인데 조만간 짓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아기 이름인데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지 않은가"라며 정재훈은 이제까지 봤던 중 가장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일찌감치 3선발로 내정되어 훈련했던 지난해 전지훈련과 달리 올 시즌 개막 전 정재훈은 확정된 보직 없이 훈련을 치렀다. 전지훈련 초반 선발로 다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불발되었고 지난해 신인왕인 이용찬이 마무리 보직을 다시 한 번 맡게 되면서 정재훈은 확정 보직 없이 미야자키 전지훈련을 치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해야할 준비는 충분히 해낸 선수가 정재훈이었다.
 
"지난해 많이 안 좋았잖아요. 어깨 부상도 찾아왔고.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정말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체력적으로 큰 문제도 없었고 페넌트레이스 성적도 잘 나왔네요".
 
발군의 활약을 펼친 데다 사랑하는 딸을 얻은 정재훈은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딸 이야기가 나온 후 연방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정재훈에게 다음 시즌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목표가 없는 것이 목표다"라고 답했다. 무슨 뜻일까.
 
"지난해 선발로 시작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했고 목표(선발 10승)도 확실하게 세워 놓았는데 오히려 더욱 부담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시즌 중에 부상도 당하면서 실패하고 나니 그 부담감이 더 가중되는 바람에 힘든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올 시즌에는 확실한 보직이 없던 상황이라 뚜렷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선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목표가 없다고 해서 책임감까지 잊은 것은 아니다. 정재훈은 수치적인 목표 설정을 거부한 대신 긍정적 사고로 2011시즌도 호성적으로 장식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목표는 없지만 책임감은 확실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면 아기가 이쁘고 귀엽고 너무 좋은거지.(웃음) 그 즐거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긍정적 사고로 마운드에 오르고 싶어요".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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