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1년여만에 日서 '급성장' 왜?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0.12.22 07: 59

그룹 초신성은 아시아 전체의 열풍인 '한류돌'에서도 조금은 특별하게 그들만의 입지를 다진 그룹에 속한다.
대개의 한류돌이 한국에서 확실히 영역을 다지고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과 일본 활동을 병행하면서 인기 상승에 시너지 효과를 내지만, 초신성은 특별한 한국 활동이 없이도 일본 활동만으로도 1년여만에 '급성장' 했다. 
초신성은 21일 오후 7시 30분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콘서트 '초신성쇼 2010'을 열고, 1만 2000여명의 관객을 홀리며 한류스타로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직접 보고서도 믿기 어려울 법한 아레나 공연장을 빽빽히 채운 관객들. 팬들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가 희끗희끗한 노인까지 나이를 불문했다. 아기를 무릎 위에 앉히고 공연을 관람하는 주부층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이날 'Get Wild'로 공연의 포문을 연 초신성은 '라라라', 'My Destiny', 'Last Kiss', '아이코토바', '그리운 날에'를 비롯해 지난 8일 발매 당일 오리콘 차트 4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본 'Shining Star'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었다. 일본 관객들은 한국어 가사 노래도 따라 부르며 공연을 즐겼다.
초신성은 단기간에 어떻게 일본에서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을까?
무엇보다도 능숙한 일본어가 그들의 최고 장점이다. 초신성은 공연 내내 유창한 일본어로 공연을 이끌며 일본 관객들과 가깝게 소통했다.
보통 한류돌의 최고 약점이 언어로 지적되는 것을 상기했을 때, 최고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리더 윤학은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일본어를 오랜시간 습득하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보통 일본에 진출한 아이돌그룹들이 1~2명의 통역사를 두고 무대에서 활동하지만, 초신성은 그들 자신의 입지로 일본 관객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물론 처음부터 일직선으로 승승장구였던 것만은 아니다. 멤버 건일은 공연 후 인터뷰에서 "처음 일본에서 음반 유통회사를 못 잡아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상황에서 멤버들이 직접 일본어로 유통사들을 찾아다녔고, 최선의 노력으로 메이저 데뷔를 천천히 시작했다. 솔직히 어려웠던 상황도 있었다"라고 힘들었던 시절도 회상했다.
그룹의 정확한 방향도 한 몫했다. 지난 2007년 일본을 프로모션차 오고가던 초신성은 생각보다 더욱 반응이 뜨겁자 한국에서 보다 일본 활동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지난 2009년 9월 정식 데뷔, 1년 3개월 동안 일본에서 무려 싱글앨범 10장을 내며 일본 팬들에게 친숙한 스타가 됐다. 올해 총 6개의 공연을 가졌고, 매진사례와 함께 점차 규모도 커졌다.
남다른 외국어 실력을 무기로 현지에 순조롭게 안착한 초신성의 또 하나의 무기는 철저한 '한국화'였다. 이는 현재 한류돌의 전략과도 상통한다.
일본에서 얻는 높은 인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멤버 건일은 "현지화 전략이 통했다. K-POOP 스타일을 일본어로 그래도 전달했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노래로 어필했고, 새로운 타이틀곡도 용감한 형제의 곡이다. K-POP이 저희를 시작으로 했다고 나름 자부한다. 일본어로 부르는 K-POP이라 생각해달라"고 설명했다.
멤버 윤학은 "한국곡으로 먼저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1집 타이틀곡으로 팬들에게 다가갔다. 한국 남자로서 보여드릴 수 있는 일본 대중에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철저히 '한국 남자'로 어필한 것을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멤버 광수는 "우리가 키가 큰 옆집 오빠같은 편안한 느낌을 준 것 같다. 멤버들이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팬들을 멀리서만 바라보려 하지 않고 이벤트 같은 것을 많이 열며 다가가고자 했다. 한국인의 열정을 멋지게 봐주셨다고 생각한다. 한국 남자가 열심히 하는 열정을 높게 해 평가 해 주신 것 같다"라고 전했다.
nyc@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