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릴러 영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 ‘추격자’(2008년 작)의 그들이 또 한번 일을 냈다.
한국영화사에 손꼽힐 만한 입봉작 만들어낸 나홍진 감독과 연기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윤석과 하정우가 또 한번 손을 잡았다는 사실 만으로 평단은 물론 관객들에게까지 100%의 기대감을 심어준 채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결코 허튼 기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황해’를 통해서.
‘황해’는 아내를 찾기 위해 청부살인을 의뢰받고 한국 땅을 밟은 연변사내가 살인 누명을 쓴 채 지독한 놈들에게 쫓기면서 벌이는 절박한 사투를 그린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복잡하고 살벌해진다.

‘추격자’가 서울 강북의 한 주택가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범’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담아냈다면, ‘황해’는 가장 기본적으로 공간적인 확장을 가져왔다. 연변에서 시작해 서울 강남 한복판, 조선족들이 사는 안산과 가리봉 일대, 인천, 보은, 청주, 영광, 순천, 문경, 울산, 부산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곳곳 ‘구남’(하정우)의 동선에 따라 영화 속 공간이 이동한다.
그 방대한 스케일 속에서 잔혹한 액션과 추격, 얽히고설킨 드라마를 담아내 관객들로 하여금 2시간 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놓지지 않고 ‘스릴’을 끌고 가야한다. 그 기본은 이야기다.

영화는 빚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택시운전수 구남의 지옥 같은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막을 연다. 희망이라곤 없는 구남 앞에 어느 날 한줄기 빚이 찾아온다. 평생 벌어도 갚을까 말까한 빚을 해결하기 위해 마작판을 떠돌던 구남 앞에 개장수 면가(김윤석)는 무심한 듯 한국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란다.
빚을 갚아준다는 달콤한 유혹과 함께 한국으로 돈 벌러 갔다가 몇 달째 연락이 끊긴 부인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선택의 여지없이 구남은 황해를 건너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구남이 죽여야 할 그 사람을 정체모를 괴한들이 대신(?) 죽이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구남은 살인범으로 몰려 경찰에게 쫓기고 설상가상으로 ‘죽이고 오라’고 지시했던 면가가 구남을 죽이러 달려온다. 생판 모르는 버스회사 사장 태원(조성하)까지 그를 쫓으면서 구남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연변으로 돌아가긴 틀렸고, 구남은 자신을 이런 상황에 빠뜨린 그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파헤치기로 했다.
가면 갈수록 서로의 이해관계에 얽힌 복잡한 관계들이 조금씩 드러나지만 구남의 목표는 오히려 명확하고 간단하다. 의뢰받은 사람을 죽이면 되는 것이고, 그게 실패로 돌아갔으니 왜 그렇게 됐는지만 알면 된다.
면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면가는 오로지 ‘돈’이다.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이는 면가는 익숙한 살인 의뢰가 들어왔고 만만한 놈 하나 골라 돈 몇 푼 쥐어주며 사람을 죽이라고 시켰다. 근데 웬 놈들이 나타나 죽이라고 시켰던 구남만 없애주면 더 큰 돈을 준다고 한다. 망설일 필요없이 돈을 위해 구남을 쫓기 시작한다.
구남과 면가를 완성해 낸 것은 온전히 배우 하정우와 김윤석의 몫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둡고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쉬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구남을 연기하는 하정우는 언제라도 뒤통수를 맞을 것 같은 위태로운 행색이다. 수없이 넘어지고 구르며 산넘고 물건너는 하정우는 날 것 그 자체다.
반면 김윤석은 ‘악마’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김윤석은 맨주먹이던 칼이던, 심지어 먹다 남은 족발 뼈든 닥치는 대로 후려갈긴다. ‘나 이런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김윤석은 산짐승 같은 야생의 강인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나홍진 감독이 만들어낸 밑그림에 하정우 김윤석가 색을 입혔고, 다시 나홍진 감독 손에 들어가 디테일을 살렸다. 기존 영화들의 2배에 달하는 170회차 촬영으로 빚어낸 250여개의 신과 5,000여 컷은 2시간 36분에 달하는 시간을 꽉 채우기 충분했다.
여기에 피 칠갑돼는 혈투장면이나 과연 몇 대의 차가 대파되는지 세는 것 만으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카 체이싱 장면은 최고다. 50대의 차량 중 20대가 대파됐고, 대형 트레일러가 전복되는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가 기대치 이상을 한 것은 분명하다.
bong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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