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현역 만기 제대 선수라는 이력은 그의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도전정신 하나로 프로야구계에서 20년을 버틴 최향남(39)이 2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했다.
롯데는 26일 일본 독립리그서의 생활을 마친 우완 최향남과 1년 연봉 7000만원에 계약했다. 지난 1990년 목포 영흥고를 졸업하고 해태(KIA의 전신)에 입단했던 최향남은 자신의 프로 21번째 해를 다시 롯데에서 보내게 되었다. 국내 무대서의 통산 성적은 51승 65패 15세이브 평균 자책점 4.04.

특히 우리나이 불혹에도 도전정신을 불태웠던 최향남은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선수 생활을 보낸 만큼 투수진에서 젊은 선수들의 두각이 필요한 롯데에 더없이 필요한 존재다. 프로 데뷔 후 최향남의 일생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해태 입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육군 현역 입대 후 돌아온 최향남은 불펜에서 뛰어난 구위를 선보이며 김응룡 당시 감독(전 삼성 사장)의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그러나 김 감독 휘하서 최향남이 올린 승수는 단 하나에 불과했다. 파이어볼러 유망주들이 흔히 겪는 제구 불안을 그 또한 겪었기 때문.
최향남의 전성기는 LG로의 트레이드 이후였다. 좌타자 최훈재(전 두산 타격코치)와의 트레이드로 LG에 새 둥지를 튼 최향남은 이적 첫 해인 1997년 8승을 올린 데 이어 이듬해 12승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부상과 개성 강한 모습으로 인해 이후 굴곡기를 거쳤다.
2000시즌 어깨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올랐던 최향남은 2002시즌 7승으로 LG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 다시 부활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또다시 부상으로 인해 방출된 뒤 KIA로 이적했다.
2004, 2005시즌 KIA에서 각각 2승을 올린 뒤 클리블랜드 트리플 A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1년 간 뛰었던 최향남은 2007시즌 롯데로 복귀했다. 2007년 5승 12패 평균 자책점 5.00에 그쳤던 최향남은 2008시즌 잠시 마무리로도 활동하며 2승 4패 9세이브 3홀드 평균 자책점 3.58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빠른 템포의 투구로 '술이 식기 전 던지는 듯 하다'라는 비유 속 '향운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2009년 초 포스팅 입찰금 101달러에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한 최향남은 결국 자신의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정식 무대는 밟지 못했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던 선수 생활 속에서도 그가 20년 간 프로 무대에서 버텼다는 점은 분명 높이 살 만 하다. 실패한 투수 유망주들이 흔히 겪는 제구 불안-부상 릴레이를 모두 겪으면서도 그는 언제나 도전 정신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재임 기간인 3년 간 롯데는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속 투수진 재편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조정훈, 이재곤, 김수완 등 젊은 투수들이 두각을 나타냈고 이외에도 진명호, 오수호 등 유망주들이 1군에서의 활약을 꿈꾸고 있다. 최근 넥센에서 이적해 온 고원준도 아직 다음 시즌 얼마나 믿음직한 활약을 펼칠 수 있을 지는 현재로서 미지수.
최향남은 투수 유망주들이 겪었던 안 좋은 경험을 모두 겪고도 21번째 프로 시즌을 준비하는 투수다. '불굴의 베테랑' 최향남은 과연 롯데 투수진에 어떤 입김을 불어넣을 것인가. 최향남이 스스로 무엇을 전해줘야 할 지 고심하기보다 유망주들이 그의 존재를 반드시 크게 깨달아야 한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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