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기자수첩] 2010년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피’로 물들었던 한 해다. 충무로에 분 스릴러 바람은 정점을 이뤘고, 배우들의 피 튀기는 연기뿐만 아니라 서로 죽이고 죽이는 액션이 판을 쳤다.
피 튀기는 액션의 중심에는 ‘아저씨’가 있었다. 지난 8월 개봉해 6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한 ‘아저씨’는 원빈의 화려한 액션이 피로 물들었다.
세상과 소외된 채 전당포를 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원빈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옆집 소녀가 납치되자 원빈은 그 꼬마를 지키기 위해 슈퍼맨이 됐다. 원빈이 슈퍼맨으로 변신하기 전 머리를 깎는 장면은 한편의 CF를 연상시켰고, 관객들은 원빈의 꽃미남 외모를 보며 환호를 지르는 동시에 원빈이 죽인 수많은 악당들의 최후를 지켜봐야만 했다.

올해 많은 논란을 야기시킨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피의 정점을 이뤘다. 그 잔혹성으로 인해 제한상영등급 판정을 받기도 했고, 극장에서는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메시지 없이 죽이기만 하는 의미없는 작혹극이라고 평가했고, 피 칠갑 속에서 의미를 찾는 평론가들도 대거 등장했다.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 평점이 10에서 1까지 극명하게 엇갈리는 반응을 얻었고, 18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화제의 중심에서 큰 논란을 가져왔음에도 예상보다 적은 수의 관객을 동원한 데는 지나친 피가 관객들의 발길을 막은 것은 아닐까.
강우석 감독의 ‘이끼’나 공포 스릴러 ‘심야의 FM’도 꾀나 많은 피가 등장했다. ‘이끼’는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비밀을 감춘 이상한(?) 마을사람들이 점점 피의 심판을 받게 되고, ‘심야의 FM’은 라디오 방송을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나간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으로 피 칠갑된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나홍진 감독, 하정우 김윤석 주연의 ‘황해’. 스릴러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며 여전히 높이 평가되고 있는 ‘추격자’의 세 사람이 만났다는 자체는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했고, 영화 자체도 ‘추격자’를 뛰어넘는 잔인함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추격자’가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두 남자의 대결 속에 힘없는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했다면, ‘황해’는 그 영역조차 없다. 자신과 반하는 편에 선 상대에 대해 무자비한 폭행과 살인이 뒤따른다. 특히 ‘면가’로 분한 김윤석이 손에 잡히는 모든 것, 그것이 먹다남은 족발이라고 할 지라도 둔기로 변해 상대의 머리통을 갈긴다.
이처럼 올해 극장가는 ‘피’의 한 해였다. 피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찾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고, 그만큼 관객도 배우도 지친 한해였다. 관객은 피칠갑된 영화의 흥행 속에 ‘청정수역’ 같은 영화를 원했고, 배우도 ‘피에 지쳤다’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에도 흐름이 있듯이 2010년은 ‘피’가 주를 이뤘다면, 2011년에는 그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지기를 영화 팬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바다.
그런 바람이 한동안은 이루어질 전망이다. 올해 마지막 주인 29일 개봉을 앞둔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는 1980~90년대 대한민국을 주름잡던 영구가 돌아와 관객들에게 웃음의 향수를 뿌릴 예정이다. 또한 내년 1월 6일 개봉해 스타트를 끊는 김윤진 박해일 주연의 ‘심장이 뛴다’는 소중한 가족을 살리기 위한 ‘심장’을 둘러싼 가슴 찡한 이야기다.
또한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는 국내 최초 청각장애 야구부의 실화를 모티브 해 그들의 도전과 희망을 선사한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역시 피와는 거리가 먼 코믹 역사극이며, 김명민 주연의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허당과 천재를 오가는 명탐정이 스캔들을 파헤치는 조선 최초의 탐정극을 다룬 영화로 설 연휴 개봉한다.
<봉준영 기자> bong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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