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 전주 KCC를 멈춰세운 건 결국 부산 KT였다.
KT는 지난 29일 KCC와 원정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113-108로 승리하며 KCC의 7연승을 저지했다. 이날 승리로 4연승을 내달린 KT는 17승7패로 원주 동부와 공동 2위를 유지하며 1위 인천 전자랜드를 반 경기차로 압박했다.

KT는 올 시즌 내내 부상선수가 속출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좀처럼 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 이처럼 잘 나가는 집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들
KT 전창진 감독은 26일 안양 인삼공사전에서 최소경기 30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에 대해 전 감독은 "내가 한 게 뭐가 있나. 전부 선수들이 잘해 준 덕분"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 기사 좀 많이 써 달라. 나에 관한 기사는 이제 더 이상 안 나가도 된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데 왜 나에 관한 기사만 쓰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만큼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좀처럼 설렁설렁하는 게 없다. 외국인선수들만 혼내지 국내선수들은 혼낼 게 없다"고 했다.
25일 대구 오리온스전이 끝난 뒤였다. 경기를 마치고 들어온 새벽 1시쯤. 구단 체육관이 시끄러웠다. 잠에서 깬 전 감독이 체육관 안을 들여다 보니 가드들이 따로 모여 연습 중이었다.
전 감독은 "우리 팀 가드들이 약하다고 하니까 그 시간까지 연습을 하고 있더라. 내가 그래서 '이 시간까지 뭐하는 거냐. 빨리 들어가라'고 혼내니까 그제서야 들어갔다. 표명일은 갈비뼈가 아픈데도 부여잡으면서 드리블을 하고 있었다. 호통 치니까 그때서야 도망가더라"며 웃어보였다. 전 감독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남다른 정신 자세에 내심 감동받은 모습이었다.
송영진이 그랬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삼성전에서 송영진은 왼쪽 엄지 부상을 당했다. 1쿼터에 부상을 당했는데 꾹 참고 뛰었다. 그것도 3차 연장전까지 전 감독을 감쪽같이 속인 채 코트를 누볐다.
전 감독은 "이야기하지 않고 참고 뛰었으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나. 송영진이 언제부터 그렇게 아픈 걸 참고 뛰는 선수였나. 예전이었다면 조금만 아파도 쉬겠다고 했을 텐데 참 열심히 하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체 연습에서 오른 발등 골절로 시즌 아웃된 김도수에 대해서도 "너무 열심히 하려다 탈이 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선수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외국인선수들도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전 감독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혼나는 찰스 로드가 그렇다. KCC전을 앞두고 오전 연습 때 로드는 전 감독에게 "그래도 내가 당신 아들뻘인데 왜 이렇게 미워하나"고 물었다.
그러자 전 감독은 "너처럼 말 안 듣는 아들을 누가 좋아하겠나"고 받아쳤다. 이에 로드도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 감독은 "로드가 성격은 좋다. 손가락을 7바늘이나 꿰매고 바로 경기에 뛰는 외국인선수가 어디 있나. 자기 스스로 붕대를 감고 뛰겠다고 했다"며 그의 정신력 만큼은 높이 샀다.

▲ '송영진 가세' 높이 부재 해결
올 시즌 내내 KT는 높이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확실한 정통센터의 부재와 함께 믿을 만한 골밑 요원의 부재로 높이가 좋은 팀들을 만날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로드가 있지만 수비에서는 전 감독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장신 포워드' 송영진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골밑에 숨통이 트였다. 송영진은 KCC전에서도 3점슛 2개 포함 6개의 야투를 모두 적중시키며 14점으로 알토란 같은 득점을 올린 데다 수비에서도 하승진에 대한 효과적인 협력수비와 박스아웃으로 KCC 높이를 어느 정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 감독은 송영진의 가세를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송영진이 가세해 든든하다. 송영진이 파워포워드로 뛰면 박상오가 스몰포워드로 돌릴 수 있다. 골밑 수비에서 박상오의 체력도 세이브할 수 있다"는 것이 전 감독의 설명이다.
실제로 KCC전에서 박상오는 연장전에만 8점을 몰아넣어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박상오가 연장전에서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송영진이 체력을 세이브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전 감독의 말. 송영진이 골밑에서 자리하게 됨에 따라 수비 강화는 물론 공격에서도 전반적인 전술의 폭을 다양화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도 KT는 지금 정상 전력이 아니라는 점이 더 놀랍다. 김도수가 없는 가운데 주전 포인트가드 표명일이 늑골 부상으로 빠져있다. 그런데도 KT는 계속 이기고 있다. 특정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은 팀 시스템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송영진은 "우리 팀은 기동력과 조직력으로 승부한다. 서있는 채로 농구를 하지 않는 팀"이라고 말했다. 공격과 수비에서 철저하게 로테이션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지만 그 대신 벤치멤버들이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준다. 코트에 투입되는 벤치멤버들이 저마다 꼭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송영진은 "지난 시즌에도 좋았지만 선수들에게 야단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정말 분위기가 좋다.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이 업그레이드됐다"고 했다.
벤치멤버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선수들이 코트 밖에서도 항상 서있는 채로 경기를 바라보고 코트에 투입되면 어떻게 하겠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항상 긴장하고 생각을 한다. 코트로 들어갈 때 뭐가 필요한지 알고 들어간다. 절대 가만히 벤치를 지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모든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각자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창원 LG 강을준 감독은 "감독의 지시를 똑바로 잘 이행하는 선수가 감독에게는 최고로 좋은 선수"라고 했다. 지금 현재 KT 선수들이 딱 그렇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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