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역대 프랜차이즈 스타 감독들은 어떠했나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1.02 07: 42

삼성의 전격적인 감독교체. 해가 지났지만 여진은 그대로 남아있다.
삼성이 지난 6년간 한국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1회, 포스트시즌 진출 5회를 이룩한 선동렬 감독을 물러나게 한 데에는 변화라는 물결이 크게 작용했다. 그 변화의 화두가 바로 지역색 강화다. 류중일 신임감독은 삼성에서 선수로 13년, 코치로 11년을 보낸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 삼성에서 최초로 성대한 은퇴식을 치러준 스타도 류 감독이다. 류 감독은 삼성의 사상 첫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역대 프랜차이즈 스타 감독들은 어떠한 결과를 낳았을까.
▲ OB 윤동균(1991~1994)

프로야구 사상 첫 선수 출신 사령탑은 윤동균 감독이다. 1991년 시즌 중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감독으로 승격된 윤 감독은 1982년 원년 OB 우승멤버였다. 선수로 8년 모두 OB에 몸담은 윤 감독은 프로야구 최초의 은퇴식과 은퇴경기까지 치렀다. 은퇴 이후 코치로 활약한 뒤 감독 자리까지 꿰찼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42세. 2년 연속 최하위였던 OB를 1994년 5위로 올려놓은 윤 감독은 1993년 OB를 6년 만에 가을잔치에 진출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터진 선수단 이탈 파문에 책임을 지고 중도 퇴진해야 했다.
▲ 롯데 김용희(1994~1998)
 
1994년 롯데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용희 감독도 큰 화제를 모았다. '미스터 롯데'라는 별명대로 초창기 롯데를 대표하는 스타선수로 두 차례나 올스타 MVP에 올랐다. 선수와 코치를 롯데에서 거친 김 감독이 사령탑에 올랐을 때 나이는 만 39세. 하지만 김 감독은 젊음을 앞세워 롯데를 조련했다. 부임 2년째에는 롯데를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올려놓으며 온화하고 합리적인 젊은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나가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부임 5년째였던 1998년 시즌 중 경질당하는 아픔을 맛봤다.
▲ LG 이광은(2000~2001)
원년 MBC 창단멤버였던 이광은 감독은 MBC·LG에서 10년간 통산 타율 2할8푼에 90홈런을 기록한 특급 내야수 출신이었다. LG에서 코치를 거쳐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사령탑 데뷔 첫 해 이 감독은 LG를 매직리그 1위에 올려놓았지만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4패로 패퇴하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3차전까지 2승1패로 앞섰지만 마무리 부재 속에 내리 3연패했다. 이듬해 초반부터 LG는 깊은 침체에 빠졌고 긴급처방으로 김성근 2군 감독이 1군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이 감독은 9승25패1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 KIA 김성한(2001~2004)
'왕조' 해태를 대표하는 강타자 출신 김성한 감독도 타이거즈 사령탑으로 활약했다. 현역 시절 최초의 한 시즌 30홈런 등 MVP 1회, 홈런왕 3회의 경력을 자랑한 김 감독은 사령탑으로 해태의 마지막과 KIA의 시작을 함께 했다. 2002~2003년 2년 연속 KIA를 페넌트레이스 2위에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직행에도 불구하고 4위팀들에게 덜미를 잡혀 '포스트시즌에 약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김 감독은 2004년 시즌 중 경질됐지만 팀은 가을잔치에 나갔다. 4년간 257승212패18무 승률 5할4푼8리로 성적이 좋았지만 포스트시즌 실패에 발목이 잡혔다.
▲ 한화 유승안(2003~2004)
유승안 감독은 원년 MBC 창단멤버로 해태를 거쳐 1986년부터 빙그레에 몸담았다. 이후 6년간 빙그레 안방을 책임지며 팀의 전성시대를 함께 했다.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날린 유 감독은 1994년부터 9년간 한화에서 코치로 몸담은 뒤 2003년에는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부임 첫 해 63승65패5무로 5할에 근접한 승률을 거두며 포스트시즌 다툼을 벌였으나 2004년 7위로 추락하며 계약기간 만료와 동시에 지휘봉을 내놓아야 했다. 당시 리빌딩 시기를 맞이했던 한화는 유 감독 체제에서 김태균과 이범호가 급성장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 송지만을 트레이드한 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 두산 김경문(2004~)
 
김경문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원년 OB의 한국시리즈 우승 때 박철순과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포수가 바로 김 감독이었다. 1년을 빼고 9년간 OB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한 김 감독은 1998년부터 6년간 배터리 코치로 두산에서 활약했다. 2004년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7년 연속으로 팀을 5할 승률로 이끌었는데 이는 김응룡 감독(13년) 다음 기록이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3회로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으로 가장 장수하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선 굵은 리더십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성적과 리빌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 KIA 서정환(2006~2007)
삼성 창단 멤버였으나 프로야구 1호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로 옮긴 서정환 감독은 안정된 내야수비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4연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주축으로 활약했다. 감독 데뷔도 삼성에서 했지만 2001년 KIA 코치로 다시 복귀했다. 2005년 감독대행을 통해 정식감독으로 취임한 서 감독, 최하위였던 팀을 2006년 부임 첫 해부터 포스트시즌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1996년 쌍방울 이후 전년도 최하위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두 번째 사례였다. 그러나 2007년 주축 선수들의 거듭된 줄부상 속에 리더십이 흔들리며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결국 계약기간 1년을 남겨놓고 경질됐다.
▲ LG 김재박(2007~2009)
2006년 창단 후 처음 최하위라는 충격을 입은 LG는 프랜차이즈 스타 김재박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선수생활 말년 아쉽게 헤어졌지만, 김 감독은 MBC 창단멤버로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5차례 골든글러브를 모두 MBC 유니폼을 입고 받았다. 2007년 LG로 최고대우를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한 김 감독은 부임 첫 해 LG를 5위로 이끌며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이듬해 최하위로 추락하더니 2009년에도 7위에 그쳤다. 3년간 한 번도 5할대 승률을 기록하지 못하며 재계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구단에서는 FA 선수를 3명이나 사오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에 걸맞는 실적을 내지 못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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