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배우 중 ‘여전사’란 이미지가 가장 어울리는 배우를 꼽자면 김윤진이다. ‘쉬리’(1998년) 속 북한공작원이 그랬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세븐데이즈’(2007년) 속 강인한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한국을 넘어 ‘월드스타’가 됐지만 여전히 연기, 그리고 배우 김윤진의 강인함에 대한 갈망이 있는 그녀다. 남자 주인공 뒤에서 그들의 도움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은 싫다는 김윤진.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를 꿈꾸는 그녀를 만났다.
김윤진은 1월 5일 개봉하는 영화 ‘심장이 뛴다’(감독 윤재근)에서 심장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하는 연희 역을 맡았다. ‘세븐데이즈’ ‘하모니’ 이후 세 번째 모성애 연기 도전이자 지난해 3월, 3년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린 후 선보이는 첫 번째 영화이다.

- ‘세븐데이즈’ ‘하모니’에 이어 또 한번 모성애를 강조한 영화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자꾸 ‘엄마’ 역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엄마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그저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은 그럴만한 나이가 됐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요즘 거의 없다. 그 흔한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도 없지 않나. 그나마 나는 매우 나은 상황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받지만 그래도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출연한 ‘하모니’가 여자 영화로는 가장 높은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라고 하니 좋기도 하면서 아쉽다.
- 영화를 선택할 때 ‘여성상’을 강조하는 편인가.
▲ 시나리오를 딱 보면 ‘아 이거 잘하면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하다’라는 역할도 있지만, 가장 첫 번째는 진부한 사람은 싫다. 요새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도 싫지만, 너도 나도 하는 뻔한 것도 싫다. 주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나만의 느낌을 믿는 편이다. 관객의 입맛은 맞출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다만 ‘내가 이 영화가 개봉하면 보러 갈까?’라는 단순한 기준이다.
- 그래서 그럴까. 김윤진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강인하면서도 쎈 ‘여전사’랄까.
▲ 배역으로 접근을 할 때 굳이 센 이미지적인 것을 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안한다. 만약 액션이라면 그것이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 이야기에 끌려다니냐 끌고 가느냐, 남자 주인공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캐릭터냐 앞서서 해결하는 캐릭터냐 그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난 후자이다. 기다리는 역할은 싫다. 그런 면에서 안젤리나 졸리의 ‘솔트’ 같은 영화를 기다린다. 멋있지 않나. 질질 울고 하는 것은 싫다.
내가 ‘쉬리’를 찍고 가장 좋았던 것은 나로 인해 ‘총 잡는 여자’가 자연스럽고 많아 졌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전에도 총을 쏘는 여자 주인공은 있었겠지만 그게 주가 되지는 않았다. 근데 ‘쉬리’는 달라 뿌듯했다. 그 후 더 많아 질 것 같았는데, 다시 없어져 아쉽지만.
지난 여름, 극장에서 엄정화 씨와 함께 ‘포화속으로’ 예고편을 보는데 둘이 동시에 ‘와~ 부럽다’는 말이 터져나왔다. 전쟁영화, 스케일이 크고 강한 영화를 할 수 있어 정말 부럽고 여배우로서 그런 캐릭터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 김윤진은 행복한 배우다. 미국드라마의 한 획을 근 ‘로스트’에 참여했다. 7년 간 ‘로스트’로 달렸는데 막상 끝나니 시원섭섭할 것 같다.
▲ 뭔가 오래 다니던 직장을 잃은 상실감과 함께 자유로움 그런 감정들이 공존한다. 2004년에 LA를 갔는데 방송국마다 ‘제 2의 로스트’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그리고 그것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 2의 뭐뭐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정말 대단한 작품 속에 있었구나 싶어 뿌듯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20세기 미국드라마를 논할 때를 ‘로스트’는 분명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 그게 김윤진의 복이고 실력 아닌가.
▲ 사실 운이 좋은 배우구나 싶다. 작품운이라는 것은 그 상황에 따라오는 것 같다. 마침 그때 다른 작품이 없었다는 것도 운 중에 하나다. 일부러 ‘로스트’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때 미국을 갔고, 마침 아무 작품도 하지 않았던 것은 운이고 한편으론 운명적인 만남이다. 그 전에 ‘쉬리’라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것도 이전에 분명 총잡은 여전사가 있었을 테지만 강렬하지 않았던 것도 내 운이다.
- 배우 김윤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양하고 화려하다.
▲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좋은 연기를 봤을 때 여전히 흥분되고 희열이 아직도 너무 크다. 그게 너무 커서, 좋은 배우를 보고 영감을 보는 것이 순환돼 돌아가는 작업이 너무 매력적이다. 사실 작품을 할 때마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이 든다. 근데 그게 어느 순간 딱 들어맞을 때 느끼는 그 희열이 너무 좋다. 연기자이니 여러 경험도 할 수 있고, 그런 것이 고통스러워도 축복인 것 같다.
bongjy@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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