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미국프로야구(MLB)와 일본프로야구(NPB) 스토브리그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선수는 누구였을까.
메이저리그에서는 '좌완특급' 클리프 리(33)였고, 일본에서는 '수호신'임창용(34)이었다.
클리프 리는 지난 12월 1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기간 5년, 총 연봉은 1억 2000만달러(약 1369억원)에 사인했다. 평균연봉은 2300만달러(약 262억원)며 나머지 500만달러(약 60억원)는 에이전트 보너스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깜짝 계약이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특급투'를 선보이며 텍사스 레인저스를 창단 첫 월드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끈 클리프 리는 텍사스와 뉴욕 양키스의 뜨거운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정확히 1년 전 비정하게 자신을 트레이드시킨 필라델피아를 선택했다.

임창용도 지난 11월 28일 원 소속팀이던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계약기간 2+1년 옵션 포함 최대 14억 2000만엔(약 200억원)이라는 금액으로 재계약했다. 지난 2008년 일본으로 건너 간 임창용은 일본에서 3년 동안 7승 11패 96세이브 평균 자책점 2.14으로 맹활약하며 복수의 메이저리그 팀들과 일본 최고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있었다. 임창용의 거취를 놓고 한달 넘게 일본과 한국에서 매일같이 추측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표 전날까지도 요미우리행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임창용 역시 예상을 깨고 야쿠르트에 남았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의 계약 과정에서 공통점이다. 이들은 프로 선수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돈'이 아닌 '사람'을 택했다는 점이다. 돈이면 어떤 선수들이든 다 데려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콧대를 꺾은 계약이었다.
클리프 리는 양키스의 계약 기간 7년에 총액 1억 4000만 달러(약 1596억원)를 거절하고 필라델피아를 택했다. 물론 계약 기간이 차이가 있지만 보장된 금액을 기준으로 볼 때 230억원이라는 큰 돈을 포기한 것이다. 더불어 메이저리거들 중에서도 선택 받은 이들만 입을 수 있는 핀스트라이프도 거절했다. 대단한 자존심이다.
그러면서 그는 입단식에서 "지난 겨울 시애틀로 트레이드를 당했을 때 많이 실망했다. 왜냐하면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고 싶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동료들, 그리고 팬들까지도 정말 좋았다. 필라델피아는 2008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며 "그러나 내가 시애틀로 트레이드 된 그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은 항상 열려 있었고, 운 좋게 난 필라델피아로 돌아오게 됐다"고 복귀 이유를 밝혔다.
임창용 역시 요미우리의 거액을 거절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 50억원 정도를 포기하고 야쿠르트에 남았다는 소문이 정설이다. 여기에 일본에서 가장 명문 구단인 '거인' 유니폼을 포기한 점 역시 임창용의 대단한 용기다.
요미우리의 거액 제안을 뿌리치고 야쿠르트를 선택한 것에 대해 임창용은 "고민을 많이 했다. 야쿠르트 선수들에게 너무 끌렸다"며 "다른 팀에 가서 우승하면 같이 웃고 즐기던 선수들이 아니었다. 이 선수들과 기쁘게 같이 웃고 우승하고 싶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처음에 갔을 때 걱정도 많이 했다. 왕따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근데 선수들과 직원 모두가 잘 해줬다. 용병이 아닌 대접을 받았다"며 "적응을 잘 하니까 야구도 편하고 재미있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계약을 이끌어낸 에이전트들이 잘못한 것은 아닐까. 클리프 리의 에이전트 대릭 브라우니커와 임창용의 에이전트 박유현이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선수들이 계약을 할 때 우선순위가 돈인지, 아니면 이 선수에게 가장 잘 맞는 팀이 어딘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이들 에이전트들이 돈을 우선으로 했다면 양키스와 요미우리를 선수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들에게도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약 과정에서 철저히 선수들에게 맞는 팀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클리프 리와 임창용을 통해 구단들로 하여금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의식을 버리게 했을 뿐 아니라 선수를 생각하는 에이전트의 모델도 보여줬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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