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코트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얼굴을 뒤덮은 채 그가 등장할 때면, 그 포스와 아우라에 ‘턱’ 숨이 막힌다. 무릎 나온 내복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한 손에는 족발을 들고 상대방의 머리를 내리칠 때는 소름이 돋는다. 요즘 어딜가다 ‘00종결자’라고 난리지만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악마종결자’다.
배우 김윤석은 ‘추격자’ 팀이 다시 뭉친 영화 ‘황해’에서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작들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스크린을 압도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 비해 절대적인 분량은 적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영화 내내 꽉 찼다.
지난해 12월 22일 개봉해 현재 185만 관객(영진위 기준)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인 ‘황해’는 아내를 찾기 위해 청부살인을 맡아 황해를 건너온 한 연변 남자(하정우)가 살인누명을 쓴 채 쫓기면서 벌이는 절박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김윤석은 극중 ‘살인청부’ 브로커로 하정우에게 살인을 지시했다가 일이 잘못되자 오히려 하정우를 죽이기 위해 그를 쫓는 면가 역을 맡았다.
면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연변에서 ‘한 가닥’하는 개장수다. 주변 동료들에게 인기도 많고 신뢰도 쌓았으며, 호탕하게 마작 한판 즐길 줄 아는 호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일순간 ‘악마’로 변한다.
어두운 호텔방에서 그를 향해 칼을 겨누는 적이 등장하자 면가는 ‘매의 눈’으로 그들을 일순간 제압한다. 수 십명과의 싸움에서도 끄떡없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은 무기가 되고, 그게 먹다 남은 족발 뼈라도 말이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방의 목숨을 끊는다. 몇 십 구의 시체에 말없이 기름을 붓고 태워버리는 그런 놈이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면가’를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악마의 탈을 쓴 채, 때론 귀엽고(김윤석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연변에서 개장수를 할 때 ‘면가’는 귀엽단다) 때론 잔혹하게 156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을 끌고 갈 수 있는 배우로 김윤석은 대체 불가다.
bong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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