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중간을 떠나 확실한 보직을 잡고 싶다".
신묘년 새해를 맞은 넥센 우완 투수 배힘찬(28)이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태세다.
배힘찬은 "선발, 중간을 떠나 확실한 보직을 잡고 싶다.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잡을 것이고 기회가 오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벌써 프로에 입단한지 10년차가 되지만 뚜렷한 보직이 없었다. 이제 배힘찬 하면 보직도 함께 떠오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스프링캠프 때부터 풀타임 기회를 잡도록 욕심을 내겠다"며 "선발이든 중간이든 40~50경기에서 80이닝은 소화하고 싶다"고 올해 설정 목표를 밝혔다.
2002년 서울고 졸업 후 현대에 입단한 배힘찬은 기대가 컸다. 그러나 2002년과 2003년 단 1경기씩 나선 데 그쳤다. 2005시즌 직후에는 팔꿈치 수술 후 곧바로 입대해야 했다.
무엇보다 탄탄하게 자리잡힌 당시 현대 마운드는 배힘찬에게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김수경, 정민태 등 내로라 하는 투수들이 촘촘하게 투수 왕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배힘찬은 2008년 창단한 히어로즈와 함께 조금씩 등판 기회를 잡았다. 2009년 21경기(31이닝)에 등판하며 첫 승을 거둔 배힘찬은 2010년에는 선발 7경기 포함 14경기(35이닝)를 소화, 2승을 올렸다.
특히 2010년 5월 1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 첫 선발(5⅓이닝 1실점)에서 승리한 배힘찬은 두 번째 7일 한화전에서도 승리(6이닝 무실점)해 가능성을 내비쳤다. 세 번째 13일 KIA전은 패했지만 5이닝(3실점)을 소화해 넥센 선발진으로 자리잡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승수 추가에 실패, 결국 2군행을 받아들여야 했다.
배힘찬은 "일단 선발 기회가 내게 올지 전혀 몰랐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그래도 세 경기까지 잘던지면서 자신감이 붙는 것 같았다"는 배힘찬은 "하지만 다음 20일 SK전에서 3회 강판되면서 자신감을 잃어갔다"고 한숨을 내쉬면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 주자를 깔고 마운드를 내려가 팀이나 다른 투수들에게 미안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경험이 부족했다. "내 탓이다"는 배힘찬의 말처럼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내가 터지든지 위기를 넘기든지' 제대로 맞붙어 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또 배힘찬은 "솔직히 나 스스로도 일을 저지르는 줄 알았다. 시즌 전 목표였던 5승까지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과욕을 부렸던 것 같다. 어깨가 좋지 않았지만 참고 던졌다. 한 번 잡은 찬스를 뺐기기 싫었다"면서 "그러다 2군으로 내려갔다"고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는 2군에서 쉬며 곧 좋아졌다. 2군 경기를 통해 1군에서 불러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다시 1군 호출을 받은 시기는 9월이 돼서였다.
배힘찬은 "잠깐 아팠지만 이후 괜찮아 계속 경기를 뛰었다. 그런데 1군에서 불러주질 않았다. 엔트리 확대가 되면 부르겠지 했는데 또 안불렀다. 9월 후반이 돼서야 연락이 왔다"면서 "그런데 1군에 올랐더니 '아픈 것은 이제 괜찮냐'고 주위 사람들이 물어 더 속상했다. 결국 내가 계속 아팠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이 배힘찬에게는 오히려 약이 됐다. 행운과 불운이 함께 했던 2010시즌 때문에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힘찬은 "코너워크 제구력이나 수싸움이 안됐다"고 자평한 뒤 "구질은 직구(투심)와 커브(슬라이더로 인식하더라)다. 그런데 구속이 어중간했다. 시즌 중간에 배운 구질이 있는데 제구만 잡히면 잘될 것 같다"고 웃었다.
더불어 "구속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며 "오래 끌고 가는 힘이 없다고 판단해 훈련량을 늘렸다. 하체의 힘이 부족했다. 구속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조금 야구를 알 것 같다"는 배힘찬은 "어떤 보직이든 배힘찬이 떠오르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거듭 의지를 다졌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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