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날씨는 참 얄궂기 그지 없다. 한국 고유의 '삼한사온'대신 강추위가 우리를 감싼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매서운 강추위에 몸을 사리고 감싸기 급급하다. 그렇지만 의외로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진정한 겨울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스포츠에서도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공군 제대와 동시에 우리나이로 서른살이 된 '폭풍' 홍진호(KT)가 30대 프로게이머 반열에 합류한 것. 홍진호는 '황제' 임요환(31, 슬레이어스)와 쌍벽을 이루는 e스포츠 아이콘. 톡 쏘는 매력이 만점인 홍진호를 OSEN이 지난 3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KT 연습실에서 기묘년 시작과 함께 만나봤다.


▲ 30대 프로게이머
홍진호에게 2011년은 정말 특별한 한 해다. 지난 1999년 데뷔 이후 우승이라는 목표로 끊임 없이 경주하던 그에게 두 번째 목표인 '30대 프로게이머' 도전이라는 과제가 본격적으로 주어졌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함께 하는, 또 책임감과 30대 프로게이머에 대한 기대감이 어우러지는 기분으로 2011년을 맞이했다.
"새해를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맞이하니깐 그 기분은 정말 특별합니다. 공군 에이스 소속이 아니라 KT 롤스터의 일원으로 팬들과 만나는 것도 벌써부터 설레고요. 제 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팬들과 앞으로 함께 할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제는 사회인 홍진호 잖아요. 제 앞에 놓여있는 책임감과 사명감에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1999년 데뷔 이후 이어온 게이머 생활을 정리해달라는 말에 그는 서슴지 않고 호탕하게 웃으며 의외의 답을 했다.
"지겹죠(웃음). 돌아보니깐 이제는 제가 최고령이더라고요. '세월이 그만큼 지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새롭게 도전하는 기분도 들고 실제 상황도 마찬가지고. 처음 30대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는 이름만 올려두는게 아니라 각종 대회서 활약하는 게이머의 지속성을 의미를 포함했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도 설레이는 건 제가 아직 프로게이머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 무모한 도전? 승부욕은 죽지 않았다
현란한 손놀림과 명석한 상황판단을 요구하는 프로게이머에게 한계 연령은 과연 있는 것일까. e스포츠 초창기 시절 23~25세를 한계 나이로 봤다면 지금 한계 나이는 더욱 낮아졌다. 2000년 대 중반 각 프로게임단이 드래프트를 진행하면 신인의 나이가 대부분 20살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16~18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6~7년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성기가 한창 지난 홍진호는 사실 무모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팀 성적도 상황은 좋지 않다. 디펜딩 챔프인 KT는 7승 11패로 최하위를 간신히 벗어난 9위에 올라있다. 홍진호가 얼마 전까지 몸 담고 있던 공군은 창단 이후 최고 성적인 8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홍진호의 다른 대명사는 승부욕. 전현역 프로게이머를 통틀어 가장 많이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홍진호가 첫 손가락이다. 한 술 더 떠 그는 2인자 위치로만 10년 넘게 존재하고 있다. 그래도 그가 아직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은 그의 지독한 승부욕 때문이다.
"원하던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은 무조건 치고 올라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팀 분위기가 좋았던 공군을 떠나 복귀한 KT가 요즘 성적이 좋지 않아 부담이 많이 됐어요. 내가 와서 더욱 성적이 나빠지면 어떻하지 라는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해요. 제가 팀을 끌어올리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임하려고요. 제 승부욕 아시잖아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30대 프로게이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잘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게 만족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성취해 나가면서 팬들에게 인정받는 게이머가 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저를 잊지 않게 만들어야죠".

▲ 숫자 '2', 악연이 아닌 인연
홍진호와 숫자 '2'는 뗄레야 뗄 수 없다. e스포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인 그는 2인자 징크스로 한창 몸살을 앓았다. 굵직굵직한 대회서 홍진호의 2인자 징크스는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코카콜라 스타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KPGA 1, 2차리그 준우승, 올림푸스 스타리그 준우승, TG삼보배 MSL 결승 준우승과 피망배 프로리그 준우승, 2005 스카이 전기리그 준우승, 2005 그랜드파이널 준우승, WCG2001과 WCG2002 준우승 등 지독하리만치 '2인자' 징크스는 선수 생활 내내 그림자처럼 함께 해왔다.
언젠가부터 경기장에서 그가 나타나면 팬들의 환호성은 그치질 않았다. 프로리그서 김택용을 이긴 시간이 2시 22분이었다고 해서 화제가 됐고, 휴가 복귀할 때 열차표가 2호차 22호석이라고 팬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또 예전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일자가 22일 이라는 것도 커뮤니티에서는 이슈가 됐다.
"제 이미지가 언제부터인가 바뀌더라고요. 예전에는 프로게이머의 전형적인 모범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웃기고 신나고 발랄한 이미지. 또 팬들에게 동정받고 위로받는 이미지로 변했다고 느껴지던데요. 처음에는 힘들었죠. 아예 저는 2인자라고 핀잔 주시는 것 같고 그랬거든요. 제 기대와는 다른 기대였고요. 지금 이 이미지는 인정하고 새로운 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 시작된 서른 잔치
라이벌인 임요환의 전향으로 스타크래프트1 리그서 30대 프로게이머는 홍진호가 유일하다. 인생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던 임요환의 전향이 개인적으로 섭섭하고 아쉽지만 홍진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요. 지금 이렇게 공기를 마시는 것도 너무 기쁜 일이죠. 예전에는 작은 일의 즐거움을 모르고 산 것 같아요. 이제는 게임도 열심히 하고 돈도 모으고 여자친구도 만들고 싶고. 차근 차근 뭔가를 밟아가고 싶네요. 숫자 '2'가 이번 해에는 '2인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홍진호가 인생 '2막'을 열었다는 '2'로 받아들여지게 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니깐요".
scrapper@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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