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30일. LG 내야수 유지현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연봉조정위원회에서 구단을 상대로 승리한 선수가 됐다. 당시 유지현은 2000만원이 인상된 2억2000만원을 요구했고, 구단은 1000만원을 삭감한 1억9000만원을 제시했다. 유지현은 2001년 129경기에서 타율 2할8푼3리 9홈런 53타점 90득점 21도루를 기록했다. 팀 성적은 6위로 하위권이었지만 타자 고과 1위로 공헌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지현의 연봉조정은 상처뿐인 승리였다. 괘씸죄에 걸린 유지현은 2003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1년 재계약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2004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당시 그의 나이는 만으로 33세. 유지현은 "영원한 LG맨으로 기억되고 싶었다"는 말로 조기 은퇴를 받아들였다.
승자가 이러한데 패자는 어떠했을까. 1991년 OB 장호연은 연봉조정신청에서 패했다. 전년도보다 500만원이 인상된 4000만원을 요구했지만, 구단은 500만원이 삭감된 3000만원을 제시했다. 조정위원회는 구단 쪽 수용안을 들어줬다. 이미 1988년, 1990년에도 연봉조정을 신청했다가 철회한 장호연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임의탈퇴됐다. 구단이 연봉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선수에 대한 보류권을 잃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선수가 임의탈퇴 처분을 받게 된다. 장호연은 후반기에 부랴부랴 복귀했으나 이미 많은 걸 잃어버린 뒤였다.

프로야구에서 한동안 연봉조정신청은 금기시됐었다. 1984년부터 1993년까지 10년간 72건의 연봉조정신청이 있었지만,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23건밖에 되지 않았다. 제도시행 첫 10년간 선수 쪽에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미 승산없는 싸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2002년 유지현이 처음으로 승리했지만 그 승리는 지금까지도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롯데 이정훈(현 넥센)이 단 800만원 차이로 연봉조정까지 갔으나 패했다. 전지훈련에 늦게 참여한 그는 시즌을 망쳤고 결국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연봉조정신청 자격은 3년차 이상 선수에게 주어진다. 소속구단과 재계약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연봉조정위원회를 통해 연봉이 결정된다. 1984년 시작된 연봉조정신청은 지난해까지 총 95차례 있었다. 이 중 76차례가 조정신청 전에 철회됐고, 19차례만이 최종 연봉조정신청까지 갔다. 그 중 승자는 유지현밖에 없다. 선수들의 완벽한 패배. 연봉조정신청은 선수들에게 허울뿐인 제도였다. 연봉조정이 신청만으로 끝난 것도 선수들이 이 같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봉조정을 신청이라도 해야 더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롯데가 이정훈에게 최초로 제시한 연봉은 6600만원. 이정훈은 연봉조정신청을 통해 그나마 600만원이라도 더 받았다.
선수들의 철저한 패배로 점철된 연봉조정신청. 롯데 4번타자 이대호가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이대호는 지난 10일 연봉조정을 신청했다. 롯데 구단이 6억3000만원을 제시한 반면 이대호는 7억원을 요구했다.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 위업을 달성한 이대호가 연봉조정신청에 나섰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이대호는 역대 연봉조정 신청자 중 유일한 전년도 MVP 수상자이며 역대 최고액 신청자이기도 하다. 그는 "FA 선수들과 똑같이 대우받고 싶다. 계약할 때까지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격 7관왕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연봉조정신청 선수 승리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여기에는 연봉협상에 있어 미지근했던 롯데 구단을 압박하겠다는 의미도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그라운드에서 역사를 쓴 이대호. 올 겨울에는 그라운드 밖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선수들을 대표해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고 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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