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미국프로야구(MLB) 강속구 우완 투수를 국내 무대에 입성시키며 잠실 마운드를 달구고 있다. 두산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엔트리 포함 및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출전 경력의 203cm 장신 우완 더스틴 니퍼트(30)를 영입했으며 LG는 최고 구속162km에 달하는 레다메스 리즈(27)를 데려왔다.
말 그대로 잠실벌에 '대물'이 떴다. 특히 두산과 LG는 오는 4월 2일 잠실구장에 열릴 2011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양팀은 단순히 시즌 개막전을 넘어서 '잠실벌 기싸움'이 걸려있다. 물론 아직 스프링 캠프도 시작하지 않은 시점이지만 니퍼트와 리즈가 정상적인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개막전에서 양 팀 히든카드로 선발 등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잠실 개막전 선발카드 출격도 점칠 수 있는 두 '대물' 투수들은 2011년 어떤 공으로 팬들을 사로잡을 것인가.
팬들이 놀랄 만한 이름값의 투수가 한국 무대에 입성했다. 특히 지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패왕의 자리를 지켜봐야 했던 두산 베어스가 김경문 감독의 계약 마지막해를 앞두고 강력한 1선발 후보를 전력에 가세시켰다는 점이 더욱 눈에 띈다.
주인공은 니퍼트. 2002년 애리조나에 15라운드서 선발된 우완 니퍼트는 2005년 애리조나서 빅리그 무대를 밟은 뒤 2008년 텍사스로 이적해 3시즌을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119경기(선발 23경기) 14승 16패 평균 자책점 5.31이며 마이너리그서는 121경기(선발 109경기) 40승 28패 평균자책점 3.41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얻었으나 "투구 기복이 심했다"라는 텍사스 구단의 저평가 아래 지난해 12월 논텐더로 풀렸던 니퍼트. 워낙 대단했던 두산의 러브콜에 메이저리그 재입성 꿈을 접어두고 코리안드림을 꿈꾼다.
▲ ML 경력과 입단 배경
애리조나 시절 니퍼트는 선발형 유망주로 자라났다. 2002년 루키리그서 4승 2패 평균 자책점 1.65의 뛰어난 성적을 올린 니퍼트는 2004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전력을 지녔다.
2005년 더블 A 테네시에서 8승 3패 평균 자책점 2.36의 쾌투를 펼치며 단숨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기염을 토했다. 2005시즌 3경기서 니퍼트는 1승 평균 자책점 5.52의 성적을 남겼고 2007시즌서부터는 36경기에 등판했다. 그 해 니퍼트는 포스트시즌 2경기에 등판해 평균 자책점 0을 기록했다.
2008년 3월 마이너리거 호세 마르테와의 트레이드로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니퍼트는 매 시즌 20경기 이상 등판하며 종종 메이저리그서 선발등판 기회도 얻었다. 확실한 승리카드로 자리를 굳히지는 못했으나 지난 시즌에는 38경기 4승 5패 평균 자책점 4.29로 나름의 성공도 거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19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와의 원정경기서 오스틴 잭슨의 타구에 머리 오른쪽을 맞기도 했다. 다행히 의식은 잃지 않았으나 텍사스는 니퍼트를 부상자 명단에 올렸다.
두산의 니퍼트 영입은 한 마디로 '긴박했다'. 텍사스서 방출 소식 이후 두산은 니퍼트 측과 접촉했으나 첫 시도서는 금액 차이로 결렬되었다. 그러나 해가 가도 확실한 후보를 찾지 못했던 두산은 니퍼트 측의 문을 두드렸고 이번에는 성공했다.
한 관계자는 "이번에 두산이 니퍼트와 계약을 맺지 못했더라면 니퍼트의 에이전트가 다른 구단에 선수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일본 구단 세 팀 또한 히로시마서 활약했던 콜비 루이스 스토리 재현을 꿈꾸며 니퍼트에 관심을 가졌다. 켈빈 히메네스를 떠나보낸 뒤 주축 선발감이 반드시 필요했던 두산은 셔터가 닫히기 직전 부랴부랴 니퍼트의 도장을 받아냈다.
▲ 구종과 구위는?
애리조나 시절 니퍼트는 90마일 중반의 직구와 낙폭이 큰 커브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직구 평균 구속은 93~4마일이지만 계투 출장이 잦았던 만큼 선발로는 140km대 후반의 구속이 예상된다. 그러나 203cm의 엄청난 키에서 비롯된 타점이 높음을 감안하면 실제 구위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올 것이다.
지난 2001년 지금은 없어진 일본 퍼시픽리그 팀 긴테쓰는 196cm의 장신 우완 제레미 파웰을 가리켜 '2층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라며 극찬한 바 있다. 파웰 또한 직구-커브 조합을 제대로 써먹으며 체감효과를 높이는 투구로 그 해 17승을 거두며 긴테쓰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두산은 니퍼트가 '2011년판 긴테쓰 파웰'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 등을 구사하는 니퍼트지만 그는 애리조나 팜서 싱커볼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에 관한 스카우팅 리포트서도 "땅볼 유도 능력이 괜찮은 유망주"라고 언급된 바 있다. 투수들의 무덤이던 아메리퀘스트필드가 아닌 국내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만큼 그의 싱커 구사력이 얼마나 통할 지 여부가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2008년 니퍼트는 시애틀 에이스인 '킹 펠릭스' 펠릭스 에르난데스와의 투수전서 7이닝 무실점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다. 지난해 6월 24일 피츠버그전 3이닝 7탈삼진 영상은 두산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중. 높은 타점에서 비롯된 빠른 직구가 매력적이었다.
다만 체인지업 구사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오프스피드 투구 보완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처럼 체인지업의 움직임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실제로 경기 도중 머리를 맞았던 공은 체인지업으로 떨어지는 움직임이 약해 몸쪽으로 향한 동시에 타자 눈높이에 맞춰지며 잘 맞은 타구가 되었다.
▲ 위험요소
메이저리그서의 성적이지만 제구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3이닝 7K 영상서 그의 경기 성적은 3이닝 4피안타 2실점(사사구 4개). 투구수 또한 대단히 많았기 때문에 조기강판당한 바 있다.
움직임이 좋은 공을 갖추고 있더라도 실패 가능성이 충분한 무대 중 하나가 바로 국내 무대. 지난해 LG가 야심차게 영입한 에드가 곤잘레스는 투심 패스트볼 구사력이 대단한 투수로 알려졌으나 1승도 없이 퇴출당했다. 한 넥센 타자는 "움직임이 워낙 좋았던 만큼 스윙을 할 듯 말 듯 움찔움찔했다. 그러자 투수가 스스로 무너지더라"라며 곤잘레스와의 맞상대 기억을 떠올렸다.
인내심을 발휘한 국내 타자들에게 많은 투구수를 소모하다가 무너졌다는 점을 증명한다. 빅리그서 '제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라는 평을 받았던 니퍼트임을 감안하면 보다 공격적인 투구도 필요하지만 최근 국내 타자들의 노림수 타격 능력은 계속 일취월장 중이다.
특히 김경문 감독은 제구 불안으로 경기 초반 많은 공을 던지는 투수는 선호하지 않는다. '신사'라는 평을 받은 2009시즌 외국인 좌완 크리스 니코스키가 두산 이적 후 3점 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으나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초반 투구수가 많아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진다"라는 점. 니퍼트 스스로 확실한 제구력을 보여줘야 감독의 믿음을 확실히 얻을 수 있다.
▲ 팀과의 궁합은?
단체 스포츠는 기량 외에도 팀 동료들과의 융화가 중요하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니퍼트는 텍사스 팬들에게 성실하고 가정적인 이미지를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 또한 "기량도 중요하지만 외국인 선수로서 얼마나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지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에서 불명예 퇴출되기는 했으나 선수들의 좋은 형이자 동료였던 우완 다니엘 리오스를 높이 평가한 이유다.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는 점은 또 하나의 무기인 싱커를 꺼내들기 좋은 환경임에 틀림없다. 주장이자 유격수 손시헌을 축으로 한 두산 내야진은 오재원, 이원석, 김재호 등이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며 타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비를 보여준다. 주포이자 3루수 김동주의 수비력이 예전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점은 아쉽지만 멀티 내야수들이 이를 상쇄할 만한 능력을 갖췄다.
특히 2루서는 고영민-오재원의 긴박한 경쟁 체제가 구축된 상황. 그만큼 정규시즌서 더 높은 경기력 향상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타선 지원이 좋다는 점도 니퍼트에게 반가운 일. 두산은 지난해 팀 타율 2할8푼1리 총 731득점을 올리며 '타격 7관왕' 이대호가 버틴 롯데에 이어 각각 2위에 올랐다.
게다가 두산은 우승 자체에 목 말라있는 팀인 만큼 2011시즌에 쏟는 집중도가 남다르다. 이방인 니퍼트가 이를 동기 부여의 계기로 삼을 지, 아니면 부담감으로 인식할 지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아무도 알 수 없는 팀과의 궁합이 니퍼트의 2011년 코리안드림 달성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퍼즐 조각이다.
farinlli@osen.co.kr
<사진>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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