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연인’ 정호현 감독, "10살 어린 쿠바 남자와 결혼할 줄이야…"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1.17 15: 28

-피플-
여행 갔던 쿠바에 반해 취재하러 다시 쿠바로
촬영하다 만난 남편과 한국 와서도 전화 열애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들 낳고 서울 정착
[이브닝신문/OSEN=백민재 기자] 먼 나라 어느 곳에서 우연히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 것.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행자들이 한번 쯤 꿈꿔보는 로망이다. 정호현 감독은 실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구 반대편의 땅 쿠바에서 지금의 남편 오리엘비스를 만났다. 10살 연하의 남자다. 1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은 실제 그녀의 이야기다. 약 1년 전, 두 사람은 현재 서울에서 정착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논문 스트레스 잊기 위해 쿠바행 
처음 정호현 감독이 쿠바로 간 것은 순전히 관광을 위해서였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 논문의 스트레스를 잊어보려고 친구와 함께 쿠바로 떠난 것이 시작이다. 그 곳에서 쿠바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캐나다는 부유한 나라지만 인간관계가 좀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적 수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하지만 쿠바는 달랐다. 많이 배운 것, 잘생긴 것도 필요 없는 나라였다. 사람 사는 끈적끈적한 매력이 있는 나라. 거기에 확 끌려서 논문이 통과된 후에 쿠바에 한 번 더 갔다.”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녀는 쿠바의 한인 후손을 취재하는 4개월짜리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사실 고민도 많았다. “왠지 이 프로젝트를 맡으면 인생이 붕 떠버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지 않으면 쿠바가 아쉬울 것 같고….” 고심 끝에 또 질렀다. 세 번째 쿠바여행. 그리고 그 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
 
▲쿠바 곳곳 찍다 만난 남편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기록 차원에서 쿠바의 곳곳을 무작정 찍고 다녔다. “쿠바인들 월급이 20달러인데, 어린이 신발 한 컬례가 10달러더라고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이 정말 혁명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궁금했고.”
인터뷰를 하면서 흔히 알려진 쿠바와 실제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쿠바를 낭만적으로만 그리는 것은 여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그녀의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의 남편 오리엘비스다. 정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실제 만났던 그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양에서 온 영화감독과 쿠바의 대학생은 그렇게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당시 오르엘비스는 대학에서 컴퓨터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사랑을 키워갔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마친 정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에 와서 6개월 정도는 전화 통화만 했어요. 사실 한달 반 정도 사귀다 돌아온 거라, 쿠바에 다시 가야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열쇠는 제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오리엘비스는 쿠바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제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관계는 끝나는 것이니까.”
 
▲검은 피부의 사위…집안 반대 심해
하지만 그녀는 결국 다시 쿠바로 향했다. 오로지 사랑 하나만 보고. 그리고 몇 개월 후, 둘은 결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쿠바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통보했다. 결혼을 할 것이라고. 이후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정 감독이 먼저 한국에 오고, 1개월 후 예비신랑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무엇보다 결혼 이후, 정 감독이 쿠바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두 나라의 문화 차는 각자의 가족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 감독은 “오리엘비스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속으로 고민이 많았다. 제 나이가 10살이 많으니까, 5살 차라고 줄여서 말할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가니까 아무도 나이를 물어보지 않더라”며 웃었다. 그날 오리엘비스의 부모님은 아들 여자 친구의 손을 붙잡고 신나게 춤을 췄다.
그러나 정 감독의 집안 분위기는 정 반대였다. 딸 보다 10살이나 어린 검은 피부의 사위라니. 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바뀌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 쳤다. 정 감독은 “지금은 이해하시지만, 결혼 전까지 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다. 어쨌든 엄마 입장에서는 이런 사위를 받아들인다는 자체가 삶의 혁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첫만남? 특별한 느낌 없었는데…
아내를 따라 낯선 땅 한국으로 오는 것이 고민되지는 않았을까. 오리엘비스는 “물론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어딜 가나 사람이 사는 것은 비슷하니까”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서는 “처음 봤을 때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이 외국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라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동양 여자에 대한 판타지는 조금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와봤더니 전혀 아니란다. “한국 여자들은 성격이 강하고, 직선적인 편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아 힘들어 보인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은, 예쁜 여자들이 지나가도 남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 예쁜 여자를 보면 일단 칭찬을 해주는게 쿠바의 문화라고 한다.
피부색도, 문화도 다른 한국이기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시선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가끔 카페 같은 곳에서 전화를 하면, 주위에서 조용히 하라고 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다른 한국인들도 굉장히 크게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웃음). 쿠바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외국인이 아무리 떠들어도. 그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쿠바의 연인’ OST 남편 작품
오리엘비스는 지난해까지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사를 했다. 올해는 어떠한 일을 해야할 지 정하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그래픽 디자인과 음악 쪽 일이다. ‘쿠바의 연인’ OST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음악과 힙합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음악은 꽝이란다. “조그만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나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음악을 하는데, 정말 봐주기 힘들다. 일부 좋은 노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냥 순간순간의 생산품 같다”고 말했다.
그가 살던 쿠바에서는 가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소비가 미덕인 나라다. 오리엘비스는 “가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 차이가 난다. 나는 소비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nescafe@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 쿠바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정호현 감독(39‧왼쪽)과 파드론 오리엘비스(29). 쿠바에서 나이 차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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