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도의 아시안컵 C조 3차전이 열린 지난 18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겨울인 관계로 날씨가 쌀쌀한 편인 데다 비까지 오면서 한국-인도의 경기는 흥행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이날 경기장에는 1만 1366명의 관중이 입장했습니다. 2만 2000명의 관중석을 보유하고 있는 알 가라파 스타디움이면 절반 넘게 채운 것입니다.
축구의 실력이나 열기를 따진다면 분명 한국 관중이 많았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만 대다수의 관중은 인도를 응원하기 위한 관중들이었습니다. 도하 인근에 학교까지 설립되어 있을 정도로 카타르에 살고있는 인도인의 숫자는 대단합니다.

대부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도인에게 넘버원 스포츠는 크리켓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크리켓에 대한 인도인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또 필드하키도 인도가 강세를 보이는 종목입니다.
하지만 인도 축구는 1951년 뉴델리서 열린 초대 아시안게임서 정상을 차지하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서는 1968년 일본이 멕시코올림픽서 동메달을 따기 전까지 아시아팀 최고 성적인 4위에 오르는 등 1950~60년대 아시안게임 우승 2회, 아시안컵 준우승 1회로 아시아 정상권에 군림한 바 있습니다.
이번 아시안컵까지 한국은 인도와 역대 전적서 14승 1무 3패를 기록했는데 이 중 3패가 모두 60년대 당한 것입니다.
한국은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예선서 인도에 2-0으로 이겼지만 결승서는 1-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4개국 풀리그로 치러진 1964년 이스라엘 아시안컵 첫 판서 0-2로 져 2연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2차전서 홍콩에 1-0으로 이겼지만 이스라엘에 1-2로 패해 3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인도는 이스라엘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1968년 메르데카배 대회서도 한국을 1-0으로 꺾었습니다. 이후 한국과 인도는 수준 차이가 벌어졌고 이번 대회에 앞서 마지막 대결이었던 1993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예선서는 한국이 8-0으로 대승했습니다.

이렇듯 인도 축구는 1970년대 들어 아시아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2006년 9월 유망주 및 지도자 육성에 대해 브라질과 협약을 맺으며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내셔널 풋볼리그’를 ‘I 리그’로 통합하며 구조를 개편했습니다.
적극적인 투자는 2007년 네루컵 우승과 2008 아시아축구연맹(AFC) 챌린지컵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현재 카타르 아시안컵에 인도가 출전한 것도 AFC 챌린지컵 우승팀 자격입니다. 볼튼 사령탑을 역임한 밥 휴튼 감독이 맡아 서남아시아에서는 최강자로 자리잡았습니다.
다시 발돋움하기 시작한 인도 축구에 대한 성원은 대단했습니다. 인도 선수가 볼을 잡든 말든 환호성을 질러댔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자리를 피하지 않고 열광했습니다. 특히 이번 대표팀서 유일한 해외파인 체트리 수닐(캔자스시티 스포르팅)이 페널티킥을 넣었을 때는 경기장이 떠나가는 듯했습니다.
물론 순수한 축구팬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응원을 보낸 인도팬들에게는 최고의 선수들이었습니다. 우렁찬 팬들의 성원 속에 힘있게 자라날 인도축구의 미래가 보였습니다.
10bird@osen.co.kr
<사진> 도하(카타르)=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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