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대호의 연봉조정신청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역대 프로야구 연봉조정신청 20차례 가운데 선수 승리는 단 한 차례. 승률로 따지면 5푼에 불과하다. 이대호는 지난해 프로야구 최초로 타격 7관왕을 달성한 최고선수였다. 그런 선수의 패배는 단순한 1패가 아니다. 연봉신청제도가 사문화된 제도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문화된 제도를 살리고 보완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 사문화 위기된 연봉조정신청
매년 겨울이 되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연봉조정신청' 뉴스가 많이 나온다. 172일 이상 로스터 등록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3시즌을 보내면, 자격을 얻게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연봉조정신청은 흔하다. 박봉에 가까운 연봉을 받은 선수들은 조정신청을 통해 연봉 대박을 노린다. 구단과 선수가 각자 생각해 놓은 연봉을 제출하는데 연봉조정위원회에서 둘 중 하나를 결정한다. 결정이 나면 뒤끝도 없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구단과 선수가 5대5에 가까운 승률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구단은 '선수에게 끌려다니는' 모양새를 싫어한다. 선수가 제대로 신청할 수가 없다. 이대호의 신청이 화제가 된 것도 그래서이기 때문이다. 이대호가 아니면 신청할 만한 선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역대 전적은 이대호 포함 20전 19승1패. 구단의 압도적인 승률이다.

▲ 선수들를 위한 권리는
이대호의 연봉조정신청에서 구단은 '갑'이고, 선수는 '을'이라는 진리가 그대로 확인됐다. 올해 연봉이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무려 90% 깎인 박명환(LG)은 보류수당으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럴 경우 1년을 쉬어야만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는 약자 신분이다. 프로 입단 과정부터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선수는 트레이드 거부 권리도 없다. 연봉도 구단에서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그런 선수들에게 연봉조정신청 제도는 피고용자가 가질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이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에 대해 합리적인 조정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야구의 실력과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데, 그에 걸맞는 시스템과 인식이 구축되지 않고 않고 있는 것이다.

▲ 합리적인 협상의 필요성
연봉조정신청의 핵심은 '절충안'이 없다는 데 있다. 구단과 선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는 합리적인 연봉을 이끌어낼 수 있다. 터무니없는 액수를 제출할 경우 조정신청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연봉 거품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구단 입장에서도 나쁜 것이 아니며, 선수들도 구체화되지 않은 자존심뿐만 아니라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연봉조정신청의 활성화는 매년 연봉 문제로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구단과 선수들에게도 이득이다. 올해도 연봉조정신청 기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계약을 마치지 못한 선수가 5명이나 남아있다. 이 선수들은 1월31일까지 계약하지 못하면 올해 선수로 뛸 수 없게 된다. 일정 기간을 지나면 자동으로 연봉조정신청으로 넘어가게 만들어 제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
연봉조정신청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가장 먼저 연봉조정위원회의 구성이다. 구단 측에 유리한 인사들로 구성되면 선수 측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투명화된 연봉조정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연봉신청 자료에 있어서도 선수가 구단보다 불리하다. 이를 위해 대리인 제도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아직 국내 프로야구 시장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KBO의 태도에 선수들은 불만이다. 선수협의회 지도부로 활약한 모 선수는 "선수협에서도 매번 꾸준하게 이야기했지만 KBO는 듣지도 않고 달라진 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대호 연봉조정신청 파문은 여론을 형성하고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이대호는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패배자가 됐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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