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풍년 두산(1)] '복귀' 이혜천, "잠자던 곰을 깨우겠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1.24 07: 18

좌완 파이어볼러라면 지옥에서도 데려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1988년 윤석환(현 투수코치) 이후 한 시즌 10승 이상을 거둔 국내 좌완이 없는 두산 베어스는 더욱 좌완 투수에 목마른 팀.
 
지난해 히어로즈서 야심차게 이현승을 영입한 두산은 그의 잇단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한국시리즈 진출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 야쿠르트서 2년 간 활약한 이혜천을 복귀시키며 투수진을 더욱 두껍게 했다.

 
거물 좌완 오달리스 페레스의 입단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이혜천과 이현승은 선발로도 계투로도 제 몫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두 투수는 모두 지난해 기대치와 어긋나는 성적을 올리며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그들은 2011년 전지훈련을 또 하나의 반전점으로 삼고 열심히 훈련 중이다.
 
"벌써 내가 프로 14년차더라. 나이 먹고 이렇게 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만 그래도 훈련은 즐겁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돌아온 그는 스스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하며 선수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2년 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두산으로 돌아온 좌완 이혜천(32)이 밝은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야구를 통해 목표 달성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1998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전신 OB에 2차 2순위로 입단한 뒤 선발-계투를 오가며 종횡무진했던 이혜천은 스리쿼터 팔스윙에서 나오는 150km의 빠른 직구가 인상적인 좌완 투수. 제구력이 빼어난 편은 아니라는 단점도 있었으나 왼손 타자들은 자신을 향해 공을 던지는 듯한 이혜천의 투구폼과 묵직한 구위에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2008시즌 후 이전부터 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야쿠르트의 러브콜을 받아 해외진출의 꿈을 이뤘던 이혜천. 그러나 그는 2년 간 계투로 61경기 1승 2패 1세이브 17홀드 평균 자책점 4.12의 기록만을 남긴 채 일본 생활을 마쳤다. 첫 해인 2009년에는 승리 계투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 시즌에는 2군이 익숙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친정팀 두산과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2011시즌 준비에 나선 이혜천은 두산 캠프의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 중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 속 몸 만들기에 충실한 선수단인만큼 얼핏 지루해질 수 있는 훈련 과정에서 이혜천은 때로는 짖궂은 장난도 치며 지루하지 않은 훈련을 하고자 노력 중이다. 해외 복귀파 투수라기보다 '동네 형'이 생각나는 이미지.
 
사실 이혜천이 일본으로 떠난 2시즌 동안 두산 투수진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이용찬, 홍상삼, 고창성 등 새로운 투수들이 1군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전지훈련에 참가한 신예들의 비중도 높아졌다. 커다란 변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혜천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과는 차이가 있는 투수진이 구성되었다. 그만큼 선배로서 팀에 다시 적응하는 과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확실히 투수진이 조금 바뀌기는 했다. 그러나 맨 처음 느꼈던 점은 바꿔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처음 합동훈련을 할 때 후배들이 무언가 부담감을 갖고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되더라도 웃으면서 밝은 마인드로 야구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다시 예전처럼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해 기분이 좋다".
 
이혜천은 원래 '의리의 사나이' 이미지가 강한 투수. 본인 스스로도 "제가 좀 별납니다"라며 인정한 이혜천은 "감독님이 좋아하는 야구가 선후배가 서로 뭉치고 단합하면서 파이팅을 강조하는 야구다. 그 색깔을 확실히 맞추고자 노력 중이다"라며 정신적인 면을 누차 강조했다.
 
사실 전지훈련 초기는 불펜 전력투구가 아닌 몸 만들기 훈련이 많은 만큼 자칫 몸보다 정신이 더 고단해질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중뿔난 모습을 보인다는 이미지를 심을 수도 있지만 힘든 훈련이 계속되는 만큼 이혜천의 '불타는 입담' 덕분에 훈련 분위기는 무미건조하지 않다. 얼핏 3년 전까지 두산에서 뛰던 홍성흔(롯데)의 훈련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 이혜천은 훈련 중간 마다 "V4야. V4"라며 확성기처럼 소리를 높였다. 한 번은 내야 바깥쪽 땅을 스스로 고르게 하면서 "우리 야수들 훈련하시는 데 어려움 없게 해야지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진지함은 떨어져 보일지 몰라도 일단 앞장서는 선배임은 분명하다.
 
"사실 나이먹고 이렇게 가벼운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힘든 훈련을 하고 있는 만큼 기왕이면 웃으면서 즐겁게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지난 2년 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하면서 곰의 근성이 조금 수그러든 것 같았는데 2년 간 잠자던 곰을 깨우고 싶다. 원래 우리 팀 분위기는 좋았지 않나".(웃음)
 
팀에서 원하는 활용도에 따라 선발-계투를 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는 이혜천. 일본에서의 아픈 기억을 씻고 팀 우승으로 명예회복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현실로 이어질 것인가.
 
farinelli@osen.co.kr 
 
<사진> 두산 베어스 제공.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