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파이어볼러라면 지옥에서도 데려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1988년 윤석환(현 투수코치) 이후 한 시즌 10승 이상을 거둔 국내 좌완이 없는 두산 베어스는 더욱 좌완 투수에 목마른 팀.
지난해 히어로즈서 야심차게 이현승을 영입한 두산은 그의 잇단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한국시리즈 진출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 야쿠르트서 2년 간 활약한 이혜천을 복귀시키며 투수진을 더욱 두껍게 했다.

거물 좌완 오달리스 페레스의 입단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이혜천과 이현승은 선발로도 계투로도 제 몫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두 투수는 모두 지난해 기대치와 어긋나는 성적을 올리며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그들은 2011년 전지훈련을 또 하나의 반전점으로 삼고 열심히 훈련 중이다.
"새해가 된 뒤 며칠 공을 던져봤거든요. 안 아프고 느낌도 괜찮더라구요".
꼭 1년 전 그는 팬들로부터 '우승 전도사'처럼 격상되어 많은 기대를 모았다. 20여 년만에 국내 좌완으로 10승 이상을 거둘만한 재목으로 주목을 받기도. 그러나 팔꿈치와 어깨, 허리까지 부상이 겹치며 2선발로 시작한 시즌을 결국 계투 보직에서 마쳤다. 한 때는 '10억 군인'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며 힘든 시즌을 보냈다.
이현승(28). 2009시즌 히어로즈 소속으로 13승을 올리며 장원삼(삼성)-마일영(한화)과 구축한 좌완 3인방 중 유일하게 맹위를 떨쳤던 그는 2009년 12월 30일 좌완 금민철과 현금 10억원의 반대급부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 시절부터 그의 투구폼을 마음에 들어하던 김경문 감독의 바람이 현실로 이어졌던 순간.
그러나 두산 이적 결정 이전부터 팔꿈치가 좋은 편이 아니던 이현승은 정작 지난 시즌 개막과 함께 기대치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며 흔들렸다. 호투를 펼친 경기도 있었으나 승운까지 따르지 않았고 결국 5월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 탈락과 어깨 부상이라는 이중고 속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
후반기서 계투로 좋은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선발 10승 이상을 기대했던 시즌 전 기대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현승의 지난해 성적은 46경기 3승 6패 2세이브 4홀드 평균 자책점 4.75. 연봉을 그대로 백지위임한 이현승은 2500만원이 삭감된 1억1500만원에 2011시즌 연봉 계약을 마치고 전지훈련지인 오이타현 벳푸시로 발을 옮겼다.
체력 훈련을 마치고 만난 이현승의 첫 이야기는 "후회만 남는다"였다. 사실 팔꿈치 통증 속에서도 던지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직구를 최대한 활용하며 나름대로 노력을 쏟았던 이현승이었으나 결국 어깨 부상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오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처음 선발로 끝까지 뛰었던 2009년에는 사실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예년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170이닝)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 여파가 쌓인 것 같았습니다".
설상가상 지난해 5월 27일에는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총 60명의 선수가 이름을 올렸으나 내심 기대했던 자신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때마침 그는 사직구장서 롯데전 선발 출장을 맥없이 준비해야 했고 결국 3⅔이닝 6피안타 5실점(4자책)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뒤 사흘 후 2군으로 내려갔다.
"아프니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군대 문제도 있고 팔은 아프고 머리가 복잡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서 야구에 집중이 안되니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고.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한 달여의 2군 생활은 이현승에게 '무욕'을 가져다주었다. 가슴 속 많은 것을 비운 순간 통증도 완화되었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가져다 준, 어떻게 보면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서 보여준 역투의 발단이 된 계기였다.
"2군에 있다보니 언제부터인가 팔이 아프지 않더라구요. 훈련장 뒷편 원적산도 오르면서 여유를 갖고 제 삶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제는 더 내려갈 곳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마음도 편해졌어요".
아직 캠프지 날씨도 쌀쌀한 편이고 전지훈련 초반인만큼 불펜 전력투구를 치르지 않은 상황. 그러나 이현승은 "며칠 가볍게 던져봤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다. 비시즌 동안 골칫거리였던 허리도 괜찮다"라며 가볍게 웃었다.
"아직 따로 목표는 정하지 않았어요. 지난해 입단 인터뷰 때 10승 이상을 거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이후로 많이 위축되더라구요. 일단 아프지 말아야지요. 몸이 안 아파야 제가 원하는 것도 할 수 있고 경기에도 나설 수 있으니까".
김 감독은 이현승에 대해 "지난해 느낀 것도 많을 것이다. 각오도 확실히 다진 것 같던데 올해 일 한 번 낼 것 같다"라며 기대감을 비췄다. 군 입대도 미루고 2011시즌을 비장하게 준비하는 이현승의 왼쪽 어깨에 다시 한 번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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