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복귀가 남긴 또 다른 파장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1.29 07: 42

충격의 파장이 오래가는 모습이다.
이범호(30)의 KIA행은 여러모로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범호는 한국프로야구 출신으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뒤 원소속팀으로 복귀하지 않은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종범 이상훈 정민철 정민태 구대성 이병규 이혜천 등 기존의 일본 진출 선수들은 모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완전한 FA가 되어 팀을 떠났던 이병규와 이혜천도 예외없이 친정팀 복귀였다. 그러나 이범호는 한화 대신 KIA를 택했다. 이범호의 KIA행이 낳을 파장은 무엇일까.
▲ 자존심 팍팍 세워줬다

최초로 일본 유턴자가 된 이종범은 2001년 시즌 중 KIA로 컴백했다. 1997년 12월 주니치로 이적할 때부터 '복귀는 해태'라고 명문화해 친정팀 복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해태를 인수해 KIA로 출범한 시점에서 구단은 이종범에게 3억5000만원이라는 연봉을 안겼다. 프로야구는 물론 당시 프로스포츠 최고연봉. 이종범의 복귀일은 그해 8월2일이었고, 활동기간만 연봉을 지급해야 해 실제 수령 연봉은 1억4000여 만원이었다. 하지만 구단은 상징적인 의미로 최고대우를 해줬다. 그것도 모자라 4500만원 상당의 엔터프라이즈 승용차까지 선사했다. '국내 복귀를 축하한다'는 의미였다. 복귀 후 이종범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그에 걸맞는 특수효과를 냈다.
다음 유턴자는 2002년 한화 정민철로 2002년 한화에 복귀하면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연봉 4억원 시대를 열었다. 이어 일본과 미국을 거쳐 그해 4월 LG로 돌아온 이상훈은 단숨에 연봉 4억7000만원에 도장을 찍으며 최고대우를 받았다. 이듬해 현대로 컴백한 정민태도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연봉 5억원을 돌파하며 성대하게 복귀했다. 일본과 미국을 거쳐 2006년 한화로 복귀한 구대성도 55만 달러(한화 약 5억34000만원)를 받았다. 2010년 LG 이병규는 4억원, 2011년 이혜천은 3억5000만원을 챙겼다. 이병규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 진출 전까지만 해도 쥐지 못했던 고액 연봉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해외 물 먹으면 대우가 달라졌다.
▲ 왜 자존심을 세워줬나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될게 있다. 바로 이적료라는 개념이다. 이병규와 이혜천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일본으로 진출할 때 원소속구단에 두둑한 이적료를 안기고 갔다. 1997년말 해태는 주니치에 이종범을 넘기면서 4억5000만엔이라는 이적료를 챙겼다. 당시 구단 재정이 열악했던 해태로서는 나쁠게 없는 장사였다. 같은 해 주니치로 진출한 이상훈도 LG에 이적료 2억엔을 안겼다. 1999년 시즌 종료 후 한화도 정민철을 요미우리로 보내며 이적료로 2억엔을 챙겼다. 한화는 이듬해 구대성이 오릭스로 진출하며 3억5000만엔의 이적료를 받았다. 2000년 말 요미우리로 간 정민태도 현대에 5억엔이라는 사상 최대의 이적료를 선물하며 떠났다.
이종범 이상훈 정민철 구대성 정민태는 완전한 FA 신분이 아니었다. 일종의 포스팅 시스템으로 구단의 동의를 얻어 해외로 진출한 케이스였다. 국내로 돌아올 때에는 친정팀으로 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구단에서도 떠날 때 그만한 몸값을 하며 이익을 남긴 선수들의 자존심을 팍팍 세워줬다. 그러나 이병규와 이혜천 그리고 이범호는 경우가 달랐다. 이들은 완전한 FA가 되어, 팀을 떠난 바람에 구단은 남는 게 없었다. 이들이 돌아올 경우 좋은 대우를 해주기란 쉽지 않았다. LG는 이병규와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절충안을 찾았고 두산은 계약금 6억원까지 안기며 이혜천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그러나 한화는 이범호에게 다른 식으로 접근했다. 특수한 경우 때문이었다.
 
▲ 특수한 이범호의 경우
이병규와 이혜천은 일본팀과 계약이 만료된 자유의 몸이었다. LG와 두산은 순수하게 선수와 협상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범호의 경우는 달랐다. 2009년 말 소프트뱅크와 2+1년 계약을 맺은 이범호는 2011년까지는 소프트뱅크 선수 신분이었다. 2011년까지 연봉 계약이 되어 있는 선수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소프트뱅크와 합의점을 찾은 한화는 이범호와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무려 9차례 만남이 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돌아섰다. 이 과정에서 이범호가 다년계약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화는 "일본에서도 계약금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도 계약금을 받는건 웃기는 일"이라고 잘랐다. FA 신분이 아닌 만큼 FA 대우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종전 유턴파들처럼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은 없었다. 한화의 사정은 급했지만 함부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선수의 한일 이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사례였다. 향후 선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결정하기 쉽지 않았고, 이범호와 합의를 찾지 못한 한화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KIA가 움직였다. KIA는 계약금 8억원과 연봉 4억원 등 1년간 총액 12억원에 이범호를 끌어안았다. 메이저리그 출신 최희섭과 서재응이 KIA로 복귀할 때 받은 계약금이 8억원. 이범호는 이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은 것이다. 2010년 이범호는 일본프로야구 2군 선수였으며 최희섭과 서재응이 쌓아온 실적과는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물론 이범호가 2011년 소프트뱅크에서 받을 연봉 1억엔(한화 약 13억원)을 포기한 대가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례로 일본프로야구의 한국 선수 공습이 본격화될지 모른다. 일단 선수를 영입해 놓고 기대에 못 미쳐 처리가 곤란할 경우 국내 구단에게 떠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해외에서 실패하더라도 국내로 돌아오면 확실하게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 이범호 복귀가 주는 또 다른 파장이다.
waw@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