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녀' 왕지혜가 똑 부러진 면모를 보여주는 KBS 2TV 수목드라마 '프레지던트'. 왕지혜는 극중 대선 후보 장일준(최수종 분)의 양녀이자 수행비서 '장인영'으로 분했다. 비록 작품은 MBC '마이 프린세스'와 SBS '싸인' 틈바구니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지만 왕지혜의 요즘은 활기가 넘치고 늘 부산하다. 배울 것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은 '프레지던트' 촬영장에서 그녀는 보람찬 겨울나기 중이다.
1월의 어느 날,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왕지혜를 만났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던 늦은 오후, 작은 카페에서 그녀는 마치 고등학생 소녀처럼 재잘댔다. 실제 만난 왕지혜는 딱 부러진 수행비서라거나 드라마 '개인의 취향' 속 악녀 카리스마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명랑하고 천진난만한 아가씨였다. 왕지혜는 지난 해 출연한 '개인의 취향'에서 미모와 능력을 겸비한 큐레이터 인희로 등장, 신분상승을 위해 단짝 친구 손예진의 애인을 가로채 결혼을 하고도 이혼 후 손예진의 새로운 상대 이민호를 유혹하는 팜므파탈 매력을 발산했다.
"그 때 정말 욕 많이 먹었어요. 주위에서 '밤길 조심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웃음) 그래도 그 작품 덕분에 젊은 분들이 많이 알아봐주셨던 거 같아요." 반면 '프레지던트'는 다소 무거운 정치극이다. 때문에 주 시청층이 확실히 다르다. 중장년 남성층을 사로잡은 덕분에 최근에는 부모님 세대의 팬들이 생겨났단다. 그래도 기대 이하 시청률 때문에 마음고생은 없느냐고 넌지시 묻자 의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희 작품이 정통 정치 드라마다 보니 아무래도 폭 넓은 사랑을 받기엔 어려운 것 같아요. 요즘 워낙 트렌디한 드라마들이 많이 나와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요. 시청률이 좀 안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속상하단 소리를 하면 제가 너무 건방진 거 아닌가요?(웃음) 많은 선생님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저는 충분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최수종, 하희라, 강신일 등 대선배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선배님, 선생님들께 배울 점이 너무 많아요. 첫 대본 리딩 때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청심환을 먹고 갔는데도 너무 떨려서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부담스럽고 긴장되던 대선배들과의 만남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촬영 중에 제 생일이 있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저 때문에 일부러 빵을 사 오셔서 챙겨주셨어요. 하희라 선배님은 촬영장 춥다고 핫팩이나 털 달린 슬리퍼 같은 것도 제 것까지 챙겨다 주시고요. 너무 다정다감하게 잘 대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죠."
마음 말고도 연기 가르침을 받는 것이 많다고 했다. "최수종 선배님은 대본이 하루 전날이나 촬영 당일에 나오는 데도 그 많은 대사를 척척 외우세요. NG도 거의 없으시고요. 최수종 하희라 강신일 선배님 등 그 분들 연기하시는 것 보면 정말 배울 점이 너무 많죠.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그냥 모니터만 하더라도 존경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아요."
정치인 보좌관 역할이 생소해서 촬영 전부터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는 그녀. "정치 컨설턴트 관련 책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미드나 일드 중에도 정치극을 찾아서 봤고요. 사실 아직 저는 대선 투표도 한 번 밖에 안 해본 터라 정치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던 거 같아요. 처음엔 용어 자체도 너무 어려웠죠."
하지만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은 그녀를 정치의 세계로 인도했다(?). "주변에 자문도 많이 구했고, 어려운 용어나 정치적 상황 등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설프게 보일 수는 없잖아요.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정치에 대해서 이제는 꽤 많이 알게 됐어요.(웃음)"

한참 '프레지던트' 얘기로 꽃을 피우던 그녀는 차기작 계획을 묻자 "이제는 나이에 맞는 트렌디한 드라마나 발랄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제가 나이에 비해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성숙한 느낌인가봐요. 제의가 들어오는 역할들이 대부분 좀 성숙하고 도도하고 차가운 캐릭터들이예요. '차도녀'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저를 아는 측근들은 '네가 어디 차도녀냐'고 놀려요. 알고 보면 저 아주 털털하고 밝은 성격이거든요. 평소에는 옷도 후드 티에 런닝화 신고, 야상 점퍼 입고 다니고 그러거든요." 1985년생인 왕지혜는 그간 출연작에서 주로 세련되고 차갑고 도시적인 여성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에 맞는 발랄하고 깜찍한 캐릭터, 말랑말랑 멜로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얘기다. "절절한 멜로도 해보고 싶고요. 캔디형이나 4차원 엉뚱한 캐릭터도 자신 있어요. 제가 가진 또 다른 매력들을 보여드릴 기회를 꼭 만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왕지혜는 "오늘 참 말 많이 한 거 같아요"라며 배시시 웃는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에선 또각또각 하이힐의 소리가 날 것만 같았는데 터벅터벅 경쾌하고 씩씩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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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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