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스 재판이 내 은퇴 결심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 0%다".
미국프로야구(MLB) 뉴욕 양키스 '베테랑' 좌완 투수 앤디 페티트(39)가 5일(이하 한국시간) 뉴양키스타디움 지하 1층 기자회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메이저리거 생활 16년 가운데 13년 동안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었던 페티트는 이날 유니폼 대신 깔끔한 사복 차림으로 아내인 로라 페티트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40여 분 동안 은퇴 소감을 밝히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양키스 홍보팀장인 제이슨 질로의 진행으로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페티트는 "지난 몇 달 동안 은퇴를 놓고 고심을 했다. 며칠 전까지도 운동을 계속했다. 당장 캠프에 합류해 공도 던질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페티트는 지난 1995년 양키스에서 데뷔, 2003년까지 에이스로 활약하며 149승을 거뒀다. 1996년과 2003년에는 커리어 하이인 21승을 기록했다. 2004년부터 3년 동안 자신의 고향인 휴스턴에서 '절친' 로저 클레멘스와 잠시 외도를 했지만 2007년 다시 양키스로 복귀해 4년 동안 54승을 추가, 통산 240승 가운데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203승을 올렸다.
이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화이티 포드(통산 236승), 그리고 레드 러핑(통산 231승)에 이어 양키스 투수 역대 3위 기록이다.
무엇보다 페티트는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는 간결한 투구폼 만큼이나 깔끔한 이미지와 따뜻한 인간성 때문에 오랫동안 양키스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페티트는 지난해에도 양키스의 2선발로 21경기에 등판 11승3패 평균자책점 3.28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활 연장과 은퇴 사이에서 고민을 했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포스트시즌 경기를 마치고 이제는 그라운드를 떠날 때라는 느낌을 받고 겨우내 장고 끝에 은퇴 결정을 했다.
소문에 따르면 페티트가 7월에 있을 클레멘스의 약물의혹 재판에 부담을 느껴 은퇴를 결심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은퇴 기자회견장에서도 이 질문은 어김없이 나왔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오는 7월 클레멘스 재판이 2011년 공을 던질지, 그렇지 않을지를 놓고 당신이 은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냐'는 양키스 담당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이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겠다"며 입을 연 페티트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0%다. 내 은퇴를 놓고 이 문제가 방해를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삶의 문제는 나와 내 가족과 연관돼 결정을 한다. 신이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줄 것이다. 클레멘스 재판이 내 은퇴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며, 이 문제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며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결코 내가 은퇴를 결정하는 데 있어 고민했던 사항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페티트는 '포스트시즌 사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 1996년, 1998∼2000년, 그리고 2009년 양키스를 5차례나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며 통산 19승(10패)을 올려 역대 양키스 투수 포스트시즌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다. 평균자책점도 3.83을 기록했다.
'어떻게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냐'는 질문에 페티트는 "사실 내 투구 성적과 수치를 살펴보면 통산 성적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무엇보다 경기에 더 집중하고, 항상 아내가 더 편하게 해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페티트의 은퇴로 1995년부터 데릭 지터(37), 마리아노 리베라(42), 그리고 호르헤 포사다(40)와 함께 이뤘던 양키스 '핵심 4인방' 체제도 깨지고 말았다. 페티트도 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잊지 못해 은퇴 결정 직후 언론에 보도되기 전 '영원한 주장'인 지터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지터 역시 페티트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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