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하루 전에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명백히 알았다. 이제 내가 야구를 다 했다는 것을 느꼈고, 더 이상 5일에 한 번씩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장고 끝에 은퇴를 결정한 미국프로야구(MLB) 뉴욕 양키스 '베테랑' 좌완 투수 앤디 페티트(39)의 기자회견 첫 마디다.
페티트는 5일(이하 한국시간) 뉴양키스타디움 지하 1층 기자회견장에서 양키스 홍보 팀장인 제이슨 질로의 사회로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 <엠엘비닷컴(MLB.com)>은 페티트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질로 홍보 팀장은 "페티트의 아내인 로라 페티트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뉴욕에 로맨틱 여행을 왔다"며 은퇴 기자회견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고, 이후 기자들은 페티트에게 은퇴를 결심한 이유,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비결, 명예의 전당 헌액, 심지어 클레멘스와 재판과 같은 예민한 질문까지도 물었다. 페티트 역시 흔쾌히 답하며 기자회견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페티트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다. 페티트는 'WFAN' 스위니 머티 양키스 담당 기자의 질문에 은퇴 이유를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페티트는 첫 질문에 앞서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스스로 설명했다. 그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계속해서 말하기 보다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답변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해 알링턴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난 뒤 '난 이제 다 했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후 동료들과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시즌에 앞서 행동을 취해야 했고 오늘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나는 스프링 캠프에 참가해 공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꾸준히 운동을 했고, 느낌도 좋다. 지난 3주 반 동안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나는 몸은 준비가 됐지만 내 심장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더 이상 선수로서 생활을 지속할 뜻이 없음을 나타냈다.

이어 'WFAN' 스위니 머티 양키스 담당 기자는 "앤디, 먼저 축하한다. 몸은 준비가 됐다고 했는데 무엇이 없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했던 것이냐"고 묻자 "갈망하는 마음이다. 갈망은 경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짐을 챙길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페티트는 "1월 어느 날 밤에 은퇴를 놓고 심각하게 생각을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당했던 부상 부위를 놓고 당장 재활을 시작해야 했다.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이제 다 했어. 당신은 더 이상 야구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군요'라고 말했다"고 밝힌 뒤 "이후 심각하게 생각을 했고, 운동에 집중해 다시 몸을 정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야구를 계속 한다는 게 맞지 않았다. 야구에 대한 갈급함도, 목마름도 없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구를 계속한다면 다시 한번 챔피언십시리즈에 올라가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꿈꿨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나는 경쟁을 해야 하지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부분에서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며 솔직한 답변을 늘어 놓았다.
두 번째 이유는 간단했다. 페티트는 "짐을 챙길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페티트는 또 여전히 잘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은퇴를 결심하는데 힘들었다는 뜻도 전했다. 그는 "지난 한달 정도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신이 내 몸을 준비하는 것을 느꼈다. 지난해 부상 때 2주 복귀를 했지만 다시 부상을 당해 재활 기간이 2달 반 가량 걸렸다. 겨울 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마운드 위에 섰을 때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좀 전에 말했듯이 내가 야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문에 따르면 페티트가 오는 7월에 있을 클레멘스의 약물의혹 재판에 부담을 느껴 은퇴를 결심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은퇴 기자회견장에서도 이 질문은 어김없이 나왔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오는 7월 클레멘스 재판이 2011년 공을 던질지, 그렇지 않을지를 놓고 당신이 은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냐'는 양키스 담당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이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겠다"며 입을 연 페티트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0%다. 내 은퇴를 놓고 이 문제가 방해를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삶의 문제는 나와 내 가족과 연관돼 결정을 한다. 신이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줄 것이다. 클레멘스 재판이 내 은퇴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며, 이 문제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며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결코 내가 은퇴를 결정하는 데 있어 고민했던 사항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페티트는 '포스트시즌 사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 1996년, 1998∼2000년, 그리고 2009년 양키스를 5차례나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며 통산 19승(10패)을 올려 역대 양키스 투수 포스트시즌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다. 평균자책점도 3.83을 기록했다.
'어떻게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냐'는 질문에 페티트는 "사실 내 투구 성적과 수치를 살펴보면 통산 성적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무엇보다 경기에 더 집중하고, 항상 아내가 더 편하게 해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페티트는 "올 시즌 내가 공을 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단 가족들과 휴가를 갈 것이며, 아들의 야구 코치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지난 16년 동안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있던 시간들을 은퇴를 기점으로 가족들과 함께 할 뜻을 내비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페티트는 은퇴 기자회견장에서 "은퇴(Retire)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사람은 일 하기를 원하고, 또 일을 해야 한다"며 '은퇴'라는 말 대신 '이제 다 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페티트는 지난 1995년 양키스에서 데뷔, 2003년까지 에이스로 활약하며 149승을 거뒀다. 1996년과 2003년에는 커리어 하이인 21승을 기록했다. 2004년부터 3년 동안 자신의 고향인 휴스턴에서 '절친' 로저 클레멘스와 잠시 외도를 했지만 2007년 다시 양키스로 복귀해 4년 동안 54승을 추가, 통산 240승 가운데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203승을 올렸다.
이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화이티 포드(통산 236승), 그리고 레드 러핑(통산 231승)에 이어 양키스 투수 역대 3위 기록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agassi@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